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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워치

미국의 아시아 전략 … 번영, 안보, 올바른 정부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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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2년의 혼란 끝에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아시아 전략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과 지난달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외교 전략에 관해 설명했다. 이 전략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트럼프 정부는 인도까지 포함해 #광범위한 아시아 외교로 눈돌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 지속돼 #한·중 관계 숙제는 한국이 풀어야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리적 범위는 다소 모호한데, 중요한 점은 트럼프 정부가 관심사의 범위를 동북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인도로까지 확장 노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인도·태평양 외교 전략의 3대 기둥으로 번영, 안보, 올바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제시했다. 각 항목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접근 방식은 과거 정부와 다르다. 이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번영’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경제적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비판을 트럼프 행정부가 맞받아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경제 관계를 재정립해왔다. 한국도 그 사례 중 하나다. 개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기존 협정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성과로 선전했다. 트럼프는 일본과의 FTA 체결을 구상하고 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맞서는 민간 프로젝트 위주의 인프라 투자 확대도 얘기하고 있다.

‘안보’의 경우 새로운 협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안보 협력에 대해서는 열린 입장을 표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안에서나 밖에서나 국경 보호를 강조해왔다.

글로벌워치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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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부에 대한 지지’와 관련해 펜스 부통령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권, 법에 의한 통치,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개인권 보호”를 언급했다. 이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민주주의 수호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가 아니었지만,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에도 올바른 통치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트럼프 정부의 아시아 전략에서 중국은 제외돼 있다. 이런 외교 전략 자체가 미국이 중국을 동등한 위치의 경쟁자로 본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미국과 몇몇 우방국의 경제적 충돌은 중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난달 연설에서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 전략이 초래한 위험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외교 전략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롯한 주요 외교정책에 어느 정도 전념하고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달에 진행된 아시아 지역의 주요 정상 회동 행사에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한 가지 참고 사항은 미국 정치에서 드디어 초당파적인 합의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은 한·미동맹 정신과 상통할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의 평화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도 기조를 같이 한다. 한국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점점 커져 왔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수행할 역할 또한 확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난제는 한·중 관계 경색 및 중국의 견제 강화에 따른 위기를 해소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다수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도 희망하는 경우) 북한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중 관계는 전반적으로 순탄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문재인 정권을 압박했다. 문 대통령을 홀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나빠졌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시도한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중국과 적의 없는 관계를 구축하여 한국의 안보·이익·국격을 지켜야 한다. 이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이 부드럽게 추진되고,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 여지를 남겨둔다면 이 전략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트럼프 대통령이 각본에 충실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 큰 변수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미국 내의 비판 여론이 증가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아예 거둬버리는 것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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