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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부동산 폭풍의 경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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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당시 이런 분석에 용기를 얻었다는 한국인 친구들은 지금도 내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러던 그들이 최근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거시경제 쇼크가 벌어졌던 당시는 몰라도, 부동산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평시의 부동산 시장을 정확히 전망할 리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경제 위기 이후 10년,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점이다. 젊은 층의 출산율은 급감하면서 한국사회는 고령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주택수요는 양에서 질로 옮겨가는 전환기에 있으며, 앞으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실수요는 서서히 의료?복지 서비스 공급에 적잖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시장을 안정시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다만 부작용을 줄이기면서 이제 고령화에도 대응해야한다.

거품 붕괴 이후 일본 시장관계자들은 아파트의 효율적인 이용 방법을 늘림과 동시에 건물의 내구성을 강화해 재건축에 드는 부담을 줄임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그 예가 91년에 도입된 정기 토지 임대차제도 (定期借地制度) 였다. 이 제도는 일정한 계약기간(50년 이상)이 끝나면 땅을 빌린 사람이 토지를 빈 땅으로 만들어 주인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이전에 있던 법은 계약 해지시 땅 주인에게 불리해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새로운 법에 따라 땅 주인은 토지 소유 보다는 운용에 관심을 더 갖게 됐고, 개발업자는 돈을 들여 땅을 사고 토지 관련 세금을 물지 않아도 땅을 빌어 고품질 아파트를 상대적으로 싸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전의 임대주택은 자금을 굴리고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어서 투자 비용을 줄여야 했으므로 낮은 품질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입주자가 처음부터 운영회사에 참가해 자금을 예탁하면 땅 주인은 이 자금을 건설자금의 일부로 충당할 수 있고, 입주자는 보다 싼 임대료로 세들어 살 수 있는 신탁형 아파트, 더 나아가서는 투자자를 대규모로 모집하는 부동산 투자신탁(REIT)을 주택에 적용하는 방식도 확산됐다.

건물의 골격부분(기둥.벽.바닥 등)과 내부부분 (공간활용.내장.설비.배관 등)을 분리해 100년 이상 이용할 수 있는 건물로 만들고, 내부 부분만 수요의 변화에 따라 변화를 주는 설계방식(SI방식)이 제안된 것은 80년대다. 당시 비싼 건설비용이 문제가 됐는데, 최근에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하고 정기 토지 임대차 제도를 조합해 땅 주인과 입주자 모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시스템이 제안돼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 정기 토지 임대차 제도에 의한 REIT 확산과 SI 방식 도입은 부동산투자의 유연성을 강화하고, 동시에 주택의 질을 높이는 데 공헌하고 있다. 한국은 원래 부동산 운용 의식이 높고 지진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건설기술만 가지고도 SI 방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시장은 생물이다. 무리한 법률시행과 감정론은 그 에너지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반면 시장에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줄 아는 지혜도 숨어있는 것이다. 일본이 부동산 폭풍을 거치며 얻은 한 가지 결론은 끊임없이 시장과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