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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힘든 시절 우리 가장은 '그'가 아닌 '그녀'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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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목이 휠만큼 차곡차곡 쌓아올린 채소 함지를 이고 행상을 나가는 1950년대 아낙네의 모습. 여성사는 이들을 전쟁기 무너진 가정의 '가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출처:한국여성근현대사 2권>

한국여성근현대사 1~3 (정치사회사.문화사.인물사)
전경옥 외 지음,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각권 1만5000원

왜 여성사인가
거다 러너 지음, 강정하 옮김, 푸른역사, 1만8000원

역사면 역사지 굳이 여성사가 필요한가?

일반인은 물론 역사학자 또한 수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들은 기존의 역사(history)는 남성중심의 역사(his story)라고 잘라 말한다. 사실 기존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격동기 해방 이후를 보자. 광복과 전쟁 발발, 혁명과 군사정변, 그리고 경제개발 계획 등 굵직굵직한 역사무대에 등장하는 이들은 100% 남성이다.

여성은 그동안 무얼 하며 살았지? 한국 근.현대 100년간 여성의 삶을 다룬 첫 통사 '한국여성근현대사'시리즈는 이에 대한 답이다. 별도의 여성사(her story)가 왜 필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이 책은 광복을 위해, 또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위해 40세 미만의 미망인들은 1인당 2.07명의 아이들을 부양해야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들은 무너진 가정의 가장으로서 떡장사.삯바느질.행상 등으로 식솔을 거느렸다. 이들 일부는 '주인없는 여자'로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부의 딸은 도시로 상경해 '식모'로,'공순이'로 오빠와 남동생을 뒷바라지했다. 시대는 도시 중산층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이상적인 주부상으로 권장했다. '한국여성근현대사'시리즈는 평범한 여성들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미시사의 접근법을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성잡지와 신문기사, 일상생활용품과 영화포스터, 대중가요와 사적인 사진 등을 사료로 끌어들였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접근 때문이다. 숙명여대 전경옥 교수 등 10여명 연구자들이 꼬박 3년을 매달렸던 이 시리즈는 1권 '개화기~1945년', 2권 '1945년~1980년', 3권 '1980년~현재'등 지난 100년을 3기로 나눴다.

또 각 권마다 정치사회.문화.인물사로 분류해 집필했다. 2004년부터 해마다 3권씩 출간해 최근 완간했다.

때맞춰 출간된 '왜 여성사인가'는 여성사라는 황무지를 개척한 미 여성사학자 거다 러너의 연구논문.연설 등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여성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이다. 책은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작가이기도 한 저자의 글맛 덕분에 읽다 보면 '왜 여성사인가'를 쉽게 알게된다. 여성 퀘이커 교도의 비폭력 저항정신이 이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과 같은 반노예 운동에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연구 등은 여성사의 전형이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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