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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내가 못 살아~ 인간 땜에 … 너구리의 과잉소비·환경파괴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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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폼포코 너구리대작전

장르:코믹 감동 애니메이션

등급:전체

홈페이지:www.cgv.co.kr

20자평:웃다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상한 만화영화. 백문이 불여일견.

헷지

목소리:브루스 윌리스·에이브릴 라빈 (황정민·신동엽·보아)

장르:코믹 액션 애니메이션

등급:전체

홈페이지:www.hedge2006.co.kr

20자평:감자칩에 중독된 동물들 '좀 나눠주면 안 되겠니?'

너구리는 야생동물이지만 비교적 사람과 친숙하다. 의뭉스럽다는 둥 둔갑을 한다는 둥, 사람들이 지어낸 듯한 얘기도 적지 않다. 아마 표정이나 행동거지가 꼭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데다 사는 곳도 구릉지대나 낮은 산악지역의 숲이어서 인간의 행동 반경과 많이 겹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인간이 이른바 '개발'이란 것을 하면서 너구리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에 비상이 걸렸다. 생존을 위협받게 된 것이다.

여기 두 너구리가 있다. 하나는 지난달 31일 개봉한 미국 드림웍스의 신작 3D 애니메이션 '헷지(원제 Over the hedge)'의 주인공 알제이. 다른 하나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에 등장하는, 쇼키치와 곤타를 비롯한 수상쩍은 놈들이다.

먼저 알제이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에 통달한 '잔머리의 대가'다. 그의 통찰에 따르면 "인간에게 전화란 먹을 것을 주문하기 위한 것이요, 헬스는 더 먹기 위한 몸부림"이다. 한마디로 동물은 살기 위해 먹지만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종족이라는 것.

곰이 모아놓은 인간의 각종 먹거리를 훔치다 사고를 낸 알제이는 일주일 안에 똑같은 분량을 확보해 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다급해진 그에게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 스컹크, 고슴도치 가족, 주머니쥐 부녀가 걸려든다. 이들은 갑자기 생겨난 끝 모를 덤불숲벽(hedge) 너머로 사람들이 집을 지어 자신들 삶의 터전이 크게 줄고, 먹을 것을 구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는 것을 막 깨달은 처지다. 일 년 내내 모아야 하는 겨울잠용 식량을 일주일 안에, 그것도 환상적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가져(사실은 훔쳐)오자는 제안이 솔깃할 따름이다.

그럼 쇼치키와 곤타는 누구일까. 도쿄 근처 타마 구릉지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이들은 '뉴타운 개발계획'으로 숲이 점점 파괴되자 그동안 중지돼 왔던 '변신술 부흥'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인간으로 변신한 너구리들은 포복절도할 게릴라 작전으로 개발계획을 백지화하려는 참이다.

10여 년의 격차가 있지만, 두 작품의 감독이 밝히는 제작 동기는 상통하는 점이 있다. "베드타운이나 골프장 건설로 생활영역이 사라지는 수난 속에서 동물들은 얼마나 힘겹게 생존하고 있을까"(다카하타)라거나 "동물들이 우리 뒷마당에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그들 뒷마당에 있다"(팀 존슨)는 것.

치즈 나초와 초콜릿 크래커를 처음 먹고 맛있어서 눈이 뒤집힌 다람쥐나 "인간은 나쁘다"고 성토하다가 "그래도 햄버거는 먹고 싶어"라고 투정을 부리는 너구리들의 모습 역시 유사성을 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두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헷지'는 환경보다는 물질 과잉시대 소비주의를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각종 인스턴트 식품과 전자제품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삶을 동물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얘기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단어에도 방점을 찍는다. 알제이가 '배신자'에서 '삼촌'으로 돌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물박멸사의 첨단 장비에 맞서는 야생 동물들의 박진감 넘치는 할리우드 액션은 눈요깃거리로도 부족함이 없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환경 문제에 보다 천착한다. 너구리들의 치열한, 그러나 인간이라는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슬픈 전투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결국 사람으로 변신한 채 출퇴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너구리들의 모습에서 '환경'을 떠올렸다면 감독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셈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당시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된 디즈니의 '라이언 킹'을 흥행에서 앞섰다.

올해 일흔하나인 다카하타 감독은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TV시리즈 '빨간머리 앤'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 황금기를 일궈낸 장본인이다. 그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비롯해 '이웃집 야마다군(1999)''추억은 방울방울(1991)''반딧불의 묘(1988)' 등 4편이 8일부터 28일까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전'이라는 이름으로 CGV 강변.용산.상암에서 상영된다. 네 편 모두 주옥같은 작품으로 일단 한번 보면 왜 그를 최고라 칭하는지 금방 알게 된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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