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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기밀 프로젝트 맡은 뉴욕공대 … 레이건의 ‘스타워즈’ 중심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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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뉴욕 공대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산학협력의 시너지’이다. 대학이 자리 잡은 뉴욕시는 인구도 많고 다양한 기업이 번창했다. 특히 롱아일랜드 캠퍼스 근처에 핵·고에너지 물리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와 함께 수많은 산업 연구소가 몰려 있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80) #<32> 평화를 위한 과학기술 #뉴욕 공대에서 국방부 프로젝트 #미국은 과학기술로 방위력 확보 #레이건 시절 ‘스타워즈’ 추진해 #소련 핵공격 무력화 전술 개발 #레이저·인공위성 첨단 기술 동원 #미국의 과학, 소련 붕괴 앞당겨 #평화 이끌고 새 시대 개척 기여

뉴욕 공대 근처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의 원형가속기. 원자핵이나 기본 입자를 가속해서 출돌시켜 물질의 미세구조를 밝히는 물리학 연구 장치다. 브룩헤이븐은 핵물리학과 고에너지 물리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미국의 국립 연구소로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다. [사진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뉴욕 공대 근처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의 원형가속기. 원자핵이나 기본 입자를 가속해서 출돌시켜 물질의 미세구조를 밝히는 물리학 연구 장치다. 브룩헤이븐은 핵물리학과 고에너지 물리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미국의 국립 연구소로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다. [사진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그런 환경의 뉴욕 공대는 다양한 신규 대학원 전공이나 산학협력 과정을 체계적으로 개발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금융 전문인들을 위해 수학·공학·경제학 등을 융합한 새로운 개념의 ‘파이낸셜 엔지니어링(Financial Engineering·금융 공학)’ 과정을 개설한 게 대표적이다. 자연과학이 뉴욕의 주요 산업인 금융과 결합해 시너지를 낳았다. 산학협력은 산업과 대학 모두에 도움이 됐다. 대학이 상아탑에서 벗어나 현장과 소통하고 새로운 흐름을 연구에 반영한 것이다. 그렇게 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1983년 3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대해 첨단 우주 장비를 개발해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제거하는 스타워즈 구상, 즉 전략방위구상(SDI)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83년 3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대해 첨단 우주 장비를 개발해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제거하는 스타워즈 구상, 즉 전략방위구상(SDI)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 공대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은 ‘평화를 지키는 과학기술의 힘’이다. 나는 뉴욕 공대에 핵융합연구소를 신설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미국 국방부의 최첨단 무기체제 연구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모든 연구가 미국의 국가기밀로 나를 포함한 연구자 전원이 최고의 보안을 요구받고 서약까지 했다.

이 연구소는 내가 떠난 뒤인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1911~2004년, 재임 81~89년) 대통령 시절 미국이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했던 ‘스타워즈(Star Wars)’, 즉 ‘전략방위구상(SDI)’의 중심지가 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 방어와 국민 보호를 위해 소련보다 우위에 있던 과학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과학기술을 앞세운 레이건의 공세는 소련이 1991년 몰락한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1983년 3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대해 첨단 우주 장비를 개발해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제거하는 스타워즈 구상, 즉 전략방위구상(SDI)를 발표하고 있다. 처단 기술로 소련의 핵공격 시도를 무력화하는 전술이었다. [사진 미국 원자력 유산 재단]

과학기술을 앞세운 레이건의 공세는 소련이 1991년 몰락한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1983년 3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대해 첨단 우주 장비를 개발해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제거하는 스타워즈 구상, 즉 전략방위구상(SDI)를 발표하고 있다. 처단 기술로 소련의 핵공격 시도를 무력화하는 전술이었다. [사진 미국 원자력 유산 재단]

이전의 미국은 소련의 핵 위협 앞에 핵전력 보강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핵 보복이 두려워 소련이 감히 핵 선제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억지 이론’에 입각한 수동적 대처다. 레이건은 생각이 달랐다. 소련이 핵탄두를 적재한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미국을 공격해도 저 멀리 우주 공간에서 미리 파괴해버리는 능동적 방어체계를 마련했다.

미국은 85년 지상 발사 레이저 광선으로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우주왕복선에 명중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인공위성으로 파괴하는 ‘헌터 킬러 위성’과 ‘우주 기뢰’ 개발에도 나섰다.

소련은 뒤늦게 핵무기를 공격 목표지 상공에서 터뜨려 강력한 전자기파(EMP)를 발생시킨 후 미국 SDI 장비를 마비시키는 대응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소련은 과학기술 역량과 인력이 앞선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형국이었다. 미국의 SDI는 공산주의 자체 모순으로 이미 무너지고 있던 소련의 붕괴 시기를 앞당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지도자가 평화를 지키고 새 시대를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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