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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집권 3년 심판한 지방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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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투표율을 보라. 중앙선관위조차도 40% 초반 정도의 투표율을 예상했다. 그런데 투표율이 2002년 지방선거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한나라당과 여당 후보의 특표율 격차가 영남지역과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충남.북과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비슷하다는 것도 큰 의미를 갖는다. 지역과 계층, 세대를 가리지 않고 여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민이 집권세력에 대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작정했다고 봐야 한다.

여당은 국민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추행하고, 심지어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의 수억원대의 돈 공천 사건이 터져도 지지율은 꿈쩍도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부패한 지방권력을 심판해 달라'는 호소도, '견제세력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읍소도 통하지 않는 까닭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국민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다가 이제는 일말의 기대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여당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던 여당이 불과 2년 만에 이렇게 몰락하게 됐는가. 여당 대표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정계개편을 약속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린 이유를 아는가. 집권세력의 무능과 편가르기, 공권력의 실종, 천박한 말폭탄 세례, 이런 것들이 국민의 가슴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냈다. 부동산 정책은 계속 실패하고, 청년 실업 문제는 해소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기업은 설비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은 '버블 세븐 지역'이니 "언제까지 웃는지 보자" "세금 한번 내보시라"느니 하면서 약을 올린다. 대통령은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말부터 시작해 툭하면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내편' '네편'으로 나누다 못해 이제는 사회 모든 현상을 '양극화'란 용어로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집권세력의 정책에 반대하면 예외없이 '수구꼴통'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렇게 적대세력을 양산한 집권 3년여의 결과가 여당의 참패로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이 전하는 이런 메시지를 겸손히, 또 두려운 심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탓, 네탓 하면서 싸울 것도 없다. 집권세력 전체의 책임이다. 대통령의 탈당이니 정계개편이니 하는 정치적 술수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망상도 버려야 한다. 이제 국민은 그런 속임수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만이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