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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문화재'는 간송만의 것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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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재를 털어 일제로 넘어갈 뻔하던 우리 문화재들을 사들여 간송이 있게 한 전형필 선생의 훌륭함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전형필 선생 덕분에 간송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소장돼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간송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 최근에는 "간송이 넉넉한 전시 공간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나 기업이 지원해야 한다"는 뜻있는 분들의 애정 어린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말하기 전에 간송이 먼저 고쳐야 할 점이 있다.

간송은 그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왜 연중 상설전시할 방도를 연구하지 않고 1년에 딱 두 차례만 전시하는가. 연구자들이 소장 유물 열람을 아무리 간청해도 절대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시 장소를 좁은 간송만으로 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전시만 해도 그렇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국보급 청자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과 같이 유명한 작품을 전시하면서 전국에서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 정도 무게 있는 유물이라면 국립박물관이나 시설이 잘 갖추어진 사설미술관 등과 사전협의해 보다 넉넉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여유를 갖고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했어야 했다. 아울러 설명서도 보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작성해 첨부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간송 전형필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전'기획은 너무나 안일했다. 낙후한 시설, 좁은 공간에 그 이름난 국보들을 전시했기 때문에 국보의 아름다움은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紋梅甁)은 2층 전시실 구석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조명이라곤 천장에 높이 매달린 둥근 주황색 수은등 12개가 고작인 전시실의 허름한 유리 진열장 안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시된 청자매명은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다. 국보를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가. 게다가 1분이 멀다 하고 진열장에 사람이 부딪쳤다. 누군가 진열장으로 넘어져 유물이 훼손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간송은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스스로 거듭나야 한다. 간송 연구원들만 유물을 독점해 세칭 '간송풍(風)' 연구실적을 내놓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관심 있는 학자들과 함께 열린 연구를 해야 한다. 유물을 효과적으로 보관하고 상설 전시할 방법을 찾으면서 연구자와 관람자에게 최대한 봉사할 생각을 해야 한다. 간송의 문화재들은 간송만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애정 어린 쓴소리를 해 본다.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서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