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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1.08인구재앙막자] 애 키우는 하루하루가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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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이 키우는 일을 전쟁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일 겁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더합니다. 업무에 집안일에…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도 끝이 안 보입니다. 직장에선 밉보일까 아이 얘기는 꺼내지도 못 합니다. 육아휴직이 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쓰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어야 합니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만한 어린이집을 구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좋다는 어린이집은 수십,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엄마는 얼마나 속이 탈까요. 우리나라의 영유아(0~5세)는 300만 명 정도입니다. 이 중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는 97만 명(32%)에 불과합니다. 40만 명이 보육시설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 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너무 멀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지요. 160만여 명의 엄마들은 아예 시설을 이용할 생각도 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빠가 집안일이나 아이 돌보는 것을 도와주면 엄마들은 한결 나아집니다. 직장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 아빠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맞벌이 부부의 '보육 투쟁'일기를 공개합니다. 중견 IT 업체에 다니며 다섯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맞벌이 엄마 유수경(35.서울 서초구 잠원동.사진)씨는 오늘도 아이를 깨우는 것으로 힘든 하루를 시작합니다.

*** am 07:00

재현아, 일어나야지

알람시계가 아침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무거운 눈꺼풀에 늑장 부리고 싶은 생각도 잠깐. 아이를 깨우려면 여유가 없다. "재현아, 일어나야지." 흔들어도 보고, "왕주사 놓는다" 협박도 해본다. 그래도 여전히 꿈 속에서 헤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우는 마음은 늘 불편하다.

눈을 감은 채로 팔만 올린 아이에게 옷을 입힌다. 출근 가방에 아이 아침 도시락, 어린이집 가방과 준비물, 퇴근할 때 맡길 빨랫감까지. 짐이 하나라도 더 있다면 머리에 이어야 할 판이다.

집을 나선지 10여 분 만에 반포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2년 전 100대의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곳이다. 눈도 못 뜨고 차에 탔던 재현이는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가 돼서야 "아빠는 갔어?"하고 잠에서 깬다. 쪼르르 달려가 벨을 누르고 씩씩하게 선생님을 부른다. 재현이도 처음 어린이집에 왔을 때는 한 달을 넘게 "안 가겠다"고 울면서 떼를 썼다. 같이 당첨된 10명 중 2명은 결국 포기했다.

아이와 함께 울면서 포기할까 고민했던 시간이 엊그제 같다. 지금도 어디선가 수많은 '후배 엄마'들이 그 힘든 순간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 am 09:00

이젠 일과의 전쟁

오늘도 가까스로 출근시간에 맞췄다. 아침에 한바탕 전쟁을 치렀지만 '팀장 유수경'의 일과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담당 업무가 홍보와 마케팅이어서 회의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다. 특히 업무가 몰리는 분기 말이 가장 힘들다. 야근이 잦아지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일이 는다.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맞추느라 일을 싸들고 집에 가는 날은 새벽까지 불을 밝히기 일쑤다. 그래도 책상 위의 가족 사진과 재현이가 삐뚤삐뚤 '엄마~ 사랑해요'라고 쓴 카드가 힘이 된다.

*** pm 07:20

엄마 보고싶었어?

오늘은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날이다. 일주일 중 이틀인데도 일에 몰리다 보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늦으면 혼자 남아있을 텐데….'꽉 막힌 도로가 야속하다. 헐레벌떡 도착해서 "재현아~"부르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온다. 지쳤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오후 8시 수경씨는 엄마 역할로 완전히 복귀한다."계란도 먹어야 튼튼해지지." 엄마가 늦게 간 탓에 배가 고팠나 보다. 서둘러 차린 밥을 아이에게 떠먹인다. 평소엔 혼자 잘 먹다가도 엄마만 보면 어리광을 부린다. 혹시 정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웬만하면 모두 받아준다. '원칙을 정해서 엄하게 해야지'하다가도 같이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미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것저것 챙겨 먹이고 나니 정작 엄마는 끼니때를 놓쳐버렸다.

피곤이 몰려와 10분만 누었으면 싶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냉장고에는 어린이집 시간표.식단.학습지 진도표 등이 빼곡히 붙어있다. 오늘 챙겨야할 일은 없는지, 내일 준비물은 뭔지 살핀다. 혹시 하나라도 빠트릴까 보고 또 본다.

엄마는 배고플 틈도 아플 틈도 없다.

*** pm 11:30

생각만 많고 몸은 녹초

"오리 책 읽어주세요." 잘 시간이 넘었건만 재현이는 쌩쌩하다. 퇴근 후 엄마.아빠를 만나면 말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목욕에 기차놀이에 엄마는 이미 녹초가 됐지만 아이는 한창 신이 났다.

사내아이라 갈수록 힘도 세지고 놀아주기가 만만치 않다. 겨우 침대에 눕히고 책을 읽어주며 아이를 재운다. "회사에서 가져온 일도 있고, 읽을 책도 있는데…" 머리는 복잡하지만 엄마 눈이 먼저 감긴다.

◆ 특별취재팀=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 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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