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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好老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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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옛 성현들의 모습은 대부분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게 묘사돼 있다. 동서양 모두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표적 지성 중 한 사람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사카이야는 '단카이(團塊)의 세대' 등 베스트셀러 작가 겸 경제평론가로 경제기획청 장관도 지낸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현재 일본이 '노인을 기피하는(嫌老) 사회'라며 '노인을 좋아하는(好老)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文藝春秋 8월호).

세계 최장수 국가(남자 평균수명 78.1세.여자 84.9세, 2001년 기준)로 고령화한 일본 사회에 대한 구조적 대책이면서 동시에 현재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제 처방이 '노인'문제 해결에 있다는 것이다.

사카이야는 현재 2백50만명인 85세 이상 노인의 생활을 모두 정부가 보장하자는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러면 85세 아래의 대부분 노인이 마음놓고 돈을 쓸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 경제의 최대 문제점 중 하나인 '저축병(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다.

일본인의 개인 금융자산은 천문학적 규모인 1천4백조엔(약 1경4천조원)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이 노인 보유분이다. 그런데 노후 걱정 때문에 저축한 돈을 꺼내 쓰기는커녕, 연금까지 쪼개 저축하는 노인들이 많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85세 이후에 대한 걱정을 없애주자는 착상이다.

또 일하고 싶은 사람은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고 주장한다. 노인이라는 인적 자산과 그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을 동시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일본 경제 캐스터인 니시무라 아키라와 하타 마미코가 펴낸 '여자의 지갑을 열어라'에서 등장한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족(族)'도 비슷한 접근이다.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란 뜻의 오팔족은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모두 갖고 있는 새로운 소비계층이라는 것이다. 오팔족이 늘면 사카이야가 바라는 호로(好老)사회가 될 수 있다.

여자 평균 수명이 80세인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섰다. 청년 실업.사오정(45세 정년) 문제에만 신경쓸 때가 아니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