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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해지역 선포후 챙겨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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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태풍 '매미'로 수해를 입은 전국 일원에 특별재해지역이 선포됐다. 대상지역은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 1백56개 시.군.구, 1천6백57개 읍.면.동으로 거의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번 특별재해지역 선포는 원칙과 절차에 모두 문제가 있다. 우선 피해의 정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정한 것이다. 광범한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원이 집중적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여야 정치권의 책임도 있다. 정치권은 앞다퉈 자기 근거지를 포함시킬 것을 행정부에 주문했고, 그러다 보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의 모든 피해지역이 경중을 불문하고 포함된 것이다.

피해조사도 졸속으로 이뤄졌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당초 15일간의 중앙합동조사단 실사를 벌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성화 때문에 불과 사흘간 실사를 벌인 상태에서 그제 부랴부랴 재해대책위원회를 열었고, 어제 특별재해지역 선포가 이뤄졌던 것이다.

엄정한 피해조사가 이뤄져야만 재난의 원인을 파악하고 복구계획을 수립해 재발을 막을 수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미국에서는 유사한 규모의 재난이 발생할 경우 1백80일 정도의 피해조사 기간을 거친다고 하지 않는가.

복구비 사용의 불투명성도 문제다. 지난해 태풍 '루사' 피해지역의 자치단체장들이 재해지역으로 지정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공사를 특정업체에 맡긴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영세해 부실공사가 많았고 부패의 고리도 될 수 있었다. 재해 복구비를 단체장이 사용(私用)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태풍 루사 피해 복구비로 무려 7조1천억원이 지출됐는데도 경북과 강원도 일부 지역이 올해 또 다시 태풍 매미의 강습으로 피해를 당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복구비를 엄정하게 책정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행정당국은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혈세만 낭비하고 재해는 되풀이 돼서는 재해지역 선포의 의미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