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제전략서 性문제까지…편지속의 '레이건 일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1981년부터 8년간 미국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92)은 괴짜였다.

국가 중대사를 다루는 회의 석상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정상회담을 준비했으며 조심스레 다뤄야 할 적국 소련을 공개석상에서 '악의 제국'이라고 막말로 비난했다. 비판자들은 그를 "골빈 사람"이라고 비웃었고 추종자들은 "자신을 낮춰 남들을 설득하고 부리는 사람"이라고 옹호했다.

그런 레이건의 또 다른 얼굴이 발견됐다. 카네기멜런대학의 키론 스키너 교수는 "레이건은 40여년에 걸쳐 적어도 5천통의 편지를 통해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설득, 자기 뜻을 관철해 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스키너 교수는 레이건의 국내문제 고문을 지낸 마틴 앤더슨 부부와 함께 레이건이 쓴 편지 5천여통을 수집해 '레이건:편지 속의 일생'이라는 책에 담아 23일 출간한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입수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레이건은 배우 시절부터 자신의 팬클럽 회장을 맡은 로레인 와그너에게 50년간 1백50여통의 편지를 보내는 등 사교활동이나 남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편지를 적극 활용했다. 편지에는 국제전략부터 가족 문제.성 문제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그는 편지를 통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이데올로기를 넘어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자"고 설득했고, 딸에게 "정직하게 살아라"고 충고했으며 한 친구에게 미.소 간 첨예한 대립을 불렀던 전략미사일방위계획(SDI)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레이건은 외국 지도자에게 보내는 편지나 자신의 딸.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격식에서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 한 편지에서 "결혼한 뒤 섹스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을 가졌는데 한 점잖은 노인에게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은 육체적 욕망을 식욕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충고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털어놓는 등 솔직담백하게 편지를 썼다.

타임은 "레이건은 편지 쓰기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음식이나 물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한 듯하다"고 풀이했다. 이 잡지는 조지 W 부시 현 정권이 레이건의 정치이념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이건의 편지들은 역사학계의 관심을 넘어 부시 행정부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