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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다 쉬어버리는 김치 … 기술 만들 대기업은 손 묶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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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본 도쿄의 대형마트인 이온몰에서 한 주부가 김치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에선 최근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 소비가 크게 늘었지만 한국산보다 일본산의 인기가 높아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장정훈 기자]

일본 도쿄의 대형마트인 이온몰에서 한 주부가 김치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에선 최근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 소비가 크게 늘었지만 한국산보다 일본산의 인기가 높아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장정훈 기자]

‘김치 세계화’를 선언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성적표는 별로다. 세계시장에 김치를 알리는 데는 일정 정도 성공했지만, 수출은 정체되고 수입은 급증하면서 김치 종주국의 체면이 서질 않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김치 세계화의 잃어버린 20년, 우리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들쭉날쭉 배춧값, 수출 최대 약점 #숙성 늦추는 균 연구 성과 미흡 #콜드체인기술 개발도 필요한데 #적합업종 돼 대기업 투자 못 늘려

일본 최대의 김치 업체인 미야마의 오야마 하지메 대표에게 “왜 김치 세계화가 안 되냐”고 물었다. 그는 “인프라도 안 갖춰놓고 어떻게 세계화가 되겠냐”고 답했다. 국내 배추 재배량이 매년 들쭉날쭉하고 그에 따라 배춧값이 등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즉, 배추 수급 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 세계화를 부르짖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배추 수급과 가격의 불안정은 김치 세계화를 가로막는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국내 1위 김치 브랜드 종가집은 지난 9월 공식 온라인몰에서 포장 김치 판매를 중단했다. 배추의 작황 부진으로 품질 좋은 배추를 구하지 못해서다. 배추·무 등 원재료 값이 뛰면서 한때 포장 김치 가격을 일시적으로 인상했다가 다시 내리기도 했다. 원재료 수급 불안정으로 내수 시장에서도 고전하는 마당에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치는 발효식품이다. 유통 과정이 길어질수록 신맛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또 김치는 익을수록 냄새가 심해진다. 김치가 세계적인 식품으로 성장하려면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필수 조건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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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다오(靑島)에서 김치 도매상을 하는 최민규(36) 씨는 “배송 시간이 길어져 김치가 익으면 중국인들이 상한 것으로 오해해 버린다”고 말했다. 특히 김치에서 골마지(식품의 표면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흰색 막)가 보이면 ‘썩은 것 아니냐’며 환불 요청이 오기도 한다. 일본 업체들은 비타민량으로 김치의 산도를 조절한다. 최대한 숙성 기간을 늦춰 신맛과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시점을 늦추는 것이다. 수출로 유통기간이 늘어지는 한국 업체에 이 기술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업체 관계자는 “김치의 숙성을 늦추는 균에 관한 연구를 일찌감치 시작했다”며 “하지만 수출이 많지 않다 보니 성과는 지지부진하다”고 말했다.

김치는 온도에 민감하지만, 장거리 수출 과정에서 보관 온도가 바뀌는 게 흔하다. 미국의 경우 배편으로 한 달이 걸리다 보니 그사이 김치 맛이 변하기에 십상이다. 외국인들에게 김치의 익은 냄새와 맛은 낯설고, 익은 김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지금까지는 김치를 담그는 과정과 김장 문화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김치볶음밥·김치찌개·김치전 같은 김치 요리를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K팝·K드라마 등에 익숙한 2040세대를 위해서 유튜브 먹방(먹는 방송) 등을 활용한 홍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윤식 한국김치협회 전무는 “김치 수출을 확대하려면 국내에서는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포장과 콜드체인 시스템에 대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며 “기술 개발과 함께 해외 현지에서는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김치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홍보 활동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김치 산업이 규제에 막혀 덩치를 키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김치는 현재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포함돼 있고, 다음 달에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5년간 대기업은 해당 사업을 인수·개시·확장할 수 없다.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위반 행위 관련 매출액의 5% 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 때문에 대규모 투자가 추가로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발효 미생물 종균 개발 같은 과학적 연구와 냉장 유통망 등 인프라 기반의 생산 유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대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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