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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성희롱 너무 많아서~"…'학생의 날' 분노 터진 스쿨미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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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현장. 김정연 기자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현장. 김정연 기자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가 열렸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해 37개 단체들이 주관한 이번 집회는 용화여고의 ‘포스트잇 미투’로 시작된 스쿨미투 7개월을 맞아, 학생의 날인 11월 3일에 맞춰 열렸다.

'여성을 위한 학교는 없다'... 광장으로 나선 학생들

3일 오후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행진 중인 한 참가자가 들고 있던 피켓. 김정연 기자

3일 오후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행진 중인 한 참가자가 들고 있던 피켓. 김정연 기자

오후 2시가 되자 집회 장소는 청소년, 졸업생 등을 비롯해 200여명의 참가자들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교복을 입고 참석한 학생도 다수였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청페모의 양지혜씨는 “집회 나가기만 하도 징계 한다는 학교 많아서 많이들 못오겠다,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줬다. 오늘 스텝들도 대부분 청소년들이고, 홍보물 제작도 청소년들이 직접 한 것”이라고 전했다. 안산 경안고등학교 사회탐구 동아리 소속 8명이 함께 나왔다는 김예지(17)씨는 “혼자 오려다가, 많이 참여할수록 좋으니까 동아리 친구들을 모았다”고 했다.

선생님들, 남성들도 다수 참석했다. 남성 기모(24)씨는 “학원강사로 잠깐 아이들 가르칠 때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10개월 생리 안하게 해줄까?’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그냥 넘겼다고 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함께 온 허모(33)씨는 “남중남고 나왔지만 여학생들이 성희롱에 시달리는 걸 많이 보고들었다”며 “다들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기억하지 못하고, 목소리내지 않으니 결국 학생들이 길바닥에까지 나온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직·간접 발언 10명, "학교는 2차가해 멈춰라"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배지. 김정연 기자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배지. 김정연 기자

이날 행사에서는 스쿨미투 고발 당사자들을 비롯해 10여명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수많은 스쿨미투 사례와, 적반하장식의 학교 대응’을 지적했다. 스쿨미투 청소년연대 ‘대구’의 여름 활동가는 “지난 8월 페이스북으로 제보를 받기 시작해 대구에서만 2주만에 100개가 넘는 피해사례가 올라왔다”며 “그러나 학교는 사과는 커녕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학생들을 징계하고 ‘대구’팀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제보자를 보호하라고 했지만 교장과 교사들은 ‘미투 반대 학생들 의견도 의견’이라는 말같지않은 소리를 했다”고도 했다.

이날 집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를 공개적으로 발언한 피해자도 있었다. 자신을 변산공동체학교 졸업생이라고 소개한 한 피해자는 “가족보다 신뢰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이 상담 도중 저를 끌어당기며 갑작스럽게 키스를 했다. ‘부부가 아닌, 서로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며 “피해사실을 알리기 시작하자 가해자는 증발하듯 사라졌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학교에서 제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더이상 그 학교의 ‘공동체’라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3도 직접 참가 "폭로와 고발로 그치지 않고 사회 변화로 이어지길"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참가자들이 써 붙인 포스트잇으로 '#WITH YOU' 문구를 적은 현수막. 김정연 기자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참가자들이 써 붙인 포스트잇으로 '#WITH YOU' 문구를 적은 현수막. 김정연 기자

학생들의 직접 발언도 이어졌다. 북일고등학교 국제과 3학년에 재학중인 박유영(18)씨는 “학생들만 있는 작은사회에서조차 다른 학생들의 성적 대상이 돼 그들만의 이야기에 각색되어 전해지고, 평가받는다”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왜 우리는 스스로의 아픔을 증명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는 “직접 우리가 학교 현실을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고3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며 “지금 우리의 물결이 폭로와 고발로 그치지 않고 사회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스쿨미투를 시작한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박재영 위원은 “미투를 외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지 모르지만 교내 성폭력 대처방안이 마련돼있지 않은 현실에서 적어도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줬다”며 “내가 조금 더 분노하고 움직이면 다음 사람들은, 내 동생은, 후배는 어쩌면 당해놓고도 참지않으면서 살수있을지도 모릅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발언이 끝난 뒤 “시작은 졸업생이 했지만 재학생 분들이 창문 포스트잇으로 동참해줘서 ‘스쿨미투’가 궤도에 오를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승의 성희롱 너무 많아서~ 나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에 등장한 현수막. '친구야 울지마라,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간다'고 쓰여 있다. 김정연 기자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에 등장한 현수막. '친구야 울지마라,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간다'고 쓰여 있다. 김정연 기자

"스승의 성희롱 너무 많아서~ 나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네"(스승의 은혜), "선생들아 교육부야 학교법인재단아, 2차가해 방관하고 혼자어딜 가느냐"(클레멘타인) 등 노래를 개사해 부르며 이들은 오후 3시 30분쯤부터 집회장소인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서울시교육청까지 1.3km를 행진했다. '친구야 울지마라,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간다'등 플래카드를 들고 이어진 행진은 오후 5시쯤 끝났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참가자들이 써 붙인 문구들. 김정연 기자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참가자들이 써 붙인 문구들. 김정연 기자

광남중 스쿨미투 고발자는 발언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선생님께서 우리보고 ‘대충 쓰고 돌아가라’고 한다. 대충 당하지 않았는데 왜 대충 써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이제 까다롭고 예민해질 것이다. 안된다고, 싫다고 말할 것이다.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우리에게 그러지 않을 때까지” 이번 집회에 참가한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여성 교사로서 이 학생들이 외치는게 뭔지 너무 잘 알고, 이런 걸 깨뜨리지 못한 책임감을 느낀다. 이 소중한 외침이 묵인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여성 교사들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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