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로야구 또 하나의 포스트시즌, 팬 시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지난 27일 광주 챔피언스 필드 앞에서 감독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야구팬. [뉴스1]

지난 27일 광주 챔피언스 필드 앞에서 감독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야구팬. [뉴스1]

프로야구는 가을야구가 한창이지만, 포스트시즌보다 팬들의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이슈가 있다. 바로 KIA 타이거즈 구단의 ‘베테랑’ 투수 임창용(42) 방출과 이를 둘러싼 KIA 팬들의 움직임이다.

임창용 방출에 KIA 팬 집단 반발 #‘김성근 감독 선임’ 시위가 시작 #비폭력은 긍정적, 월권 논란 우려

KIA 구단은 지난 24일 “임창용과 내년 시즌에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우승에서 올해 5위로 떨어진 KIA는 선수단 개편 과정에서 임창용을 내보냈다. 김기태 감독과 구단의 이런 결정에 대해 팬들이 반발했다. 임창용은 올 시즌 불펜과 선발 마운드를 오가며, 37경기에서 5승5패, 4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5.42를 기록했다.

구단 결정에 반발하는 KIA 팬들은 포털사이트에 ‘김기태 퇴진 운동 본부’ 카페를 개설했다. 30일 현재 회원이 1만 2000여명이다. 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KIA 타이거즈 내부 감사 요청’ ‘김기태 감독 경질’ 등의 글을 올렸다. 지난 27일에는 50여 명의 팬이 KIA 홈구장인 광주의 기아 챔피언스 필드 앞에 모여 “김기태 아웃”을 외쳤다. 김 감독은 시위에 참여한 팬 3명을 감독실로 불러 40여분간 대화를 나눴지만, 팬들은 추가 시위를 할 계획이다.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에선 ‘시즌 끝=시위 시작’이 관례처럼 됐다. 그 시작은 2014년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라’는 한화 이글스 팬의  1위 시위였다. 지난해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LG 트윈스 팬들이 ‘양상문(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 단장 퇴진’ 시위를 벌였다. 성적이 좋아도 팬들의 시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 준우승한 두산 베어스 팬들은 구단이 오랜 기간 팀에 몸담았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내보내자 ‘니퍼트를 데려오라’고 시위를 벌였다.

민훈기 해설위원은 “야구팬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이 예전과는 바뀌었다. 1980~90년대 팬들은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서 지면 구단 버스에 불을 지르거나, 경기장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과격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평화적인 촛불 집회가 보편화하면서 야구팬들 역시 비폭력적이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식으로 시위한다”고 분석했다.

시위의 방식이 비폭력적으로 바뀐 건 긍정적이다. 관중 800만 시대를 맞아 어린이 팬들도 야구장 내외에서 프로야구를 지켜본다. 하지만 시위와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단이 결정할 부분과 팬들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의 경계를 오가는 이른바 ‘월권’에 대해서다.

실제로 ‘시위를 하면 (구단이) 바뀐다’는 인식이 팬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2014년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라’는 팬들의 1위 시위가 벌어진 직후, 김 감독이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 시위의 성공사례로 보이지만 우연의 일치였다. 임헌린 한화 홍보팀장은 “김성근 감독 영입 건은 그 전부터 말이 나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1인 시위가 주목을 받으면서 시위 때문에 선임이 된 거로 비쳤다”고 말했다.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팬들의 목소리가 다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점도 경계할 부분이다. KIA 팬 최희창(45)씨는 “임창용이 떠나는 건 아쉽지만, 이런 일로 시위까지 벌이는 상황은 안타깝다. 김기태 감독의 남은 계약 기간(2년) 동안 좀 더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민훈기 해설위원도 “팬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팀과 선수를 위해서라도 시위가 장기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