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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뜨겁게 달군 벤치클리어링, 지켜야 할 불문율은?

중앙일보

입력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감정 대립을 펼친 SK 김성현(왼쪽)과 넥센 재리 샌즈. [연합뉴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감정 대립을 펼친 SK 김성현(왼쪽)과 넥센 재리 샌즈. [연합뉴스]

'벤치 클리어링(bench clearing)'.

프로야구에서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가 '더그아웃 벤치가 깨끗하게 빈다'는 뜻에서 나온 용어다. 보복성 위협구나 몸맞는 공이 원인이 돼 격렬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다른 종목에선 보기 힘든 야구만의 독특한 문화다.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는 '벤치 클리어링' 시리즈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1·2차전에서 잇따라 양 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1차전에선 SK 최정이 넥센 브리검의 몸쪽 위협구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자, 양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2차전에선 넥센 제리 샌즈가 병살플레이를 막기 위해 거친 슬라이딩을 하다 SK 2루수 강승호를 넘어뜨렸다. 그러자 SK 내야수 김성현은 손가락 욕을 해 KBO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17일 열린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벤치클리어링을 벌인 LA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 [AP=연합뉴스]

17일 열린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벤치클리어링을 벌인 LA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 [AP=연합뉴스]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LA 다저스 매니 마차도는 1루 베이스를 밟는 과정에서 밀워키 브루어스 1루수 헤수스 아길라의 발을 치고 지나갔다. 곧바로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고, 밀워키의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더러운 플레이"라고 마차도를 비난했다. 고의로 상대 선수 발을 밟은 정황 때문에 마차도는 벌금까지 냈다. 그래도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모두 '신경전'에서 끝났을 뿐,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업자간 '불문율'을 지켰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불문율 중 하나는 벤치 클리어링을 하더라도 부상을 막기 위해 '도구'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더 큰 난투극으로 이어진다.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벤치 클리어링으로 기억되는 1990년 OB-삼성전이 그랬다. 당시 OB 투수 김진규는 타자 강기웅에게 빈볼성 몸쪽 공을 던졌고, 강기웅은 배트를 든 채 마운드로 향했다. 흥분한 두 팀 선수들은 둘을 뜯어말리는 대신 주먹질과 발길질을 주고받았다.

20분 이상 이어진 벤치 클리어링 과정에서 김동앙 주심은 선수에게 발길질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졌다. 선수 6명이 퇴장당했고, 강기웅과 이복근은 폭력 혐의로 형사입건됐다. 학연과 지연으로 엉킨 프로야구에서 좀처럼 드문 일이다.

2015년 '야구공 투척' 사건 역시 도를 넘은 경우였다. 2015년 두산 오재원과 NC 에릭 해커(현 넥센)가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두산 벤치에서 공이 날아왔다. 나중에 민병헌(현 롯데)은 자신이 한 행동이라고 털어놨고, 결국 그는 3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1999년 당시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진 LA 다저스 박찬호(오른쪽)의 발차기 장면. [중앙포토]

1999년 당시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진 LA 다저스 박찬호(오른쪽)의 발차기 장면. [중앙포토]

발차기 역시 금지사항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찬호(은퇴)의 '이단옆차기' 사건이다.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인 1999년 LA 에인절스전 도중 타자로 타석에 섰다가 상대 팀 선발투수 팀 벨처에게 발차기를 했다. 박찬호는 "땅볼을 치고 1루로 가는데 벨처가 강하게 글러브로 태그를 했다. 게다가 인종차별적인 발언까지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감정이 격해진 박찬호는 그대로 뛰어올라 벨처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박찬호의 발차기는 2009년 미국의 ESPN이 선정한 'MLB 역대 난투극 9장면' 가운데 6위에 오르기도 했다.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있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모든 선수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넥센과 SK의 플레이오프 도중 일어난 벤치 클리어링 당시엔 외야 불펜에 있던 구원투수들까지 모두 뛰쳐나와 가담했다. 실제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싸우진 않아도 '팀 동료'로서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선 벤치 클리어링에 불참한 선수에게 벌금을 매기는 경우도 있다.

단, 예외는 있다. 당일과 다음날 선발 투수는 벤치 클리어링에서 빠지는 게 불문율이다. 자칫 몸싸움을 벌이다 다치면 당장 팀의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화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는 동료인 로사리오가 위협구를 맞자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몸싸움까지 벌이다 손가락을 다쳤다. 그 결과 비야누에바는 보름 정도 엔트리에서 빠졌고, 한화는 큰 타격을 받았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도 경기 당일 밤이나 다음날 오전에 주장이나 감독이 상대 팀에 연락한 뒤 야구장에서 '공식적'으로 화해하는 게 일반적이다. 2015년 두산-NC의 벤치 클리어링 이후에도 그런 절차를 밟았다. 당시 원정팀인 두산 김태형 감독은 오재원과 민병헌을 데리고 NC 쪽 더그아웃을 찾았다. 그러자 NC 김경문 감독은 주장 이종욱과 해커를 불렀고, 서로 사과하면서 마무리됐다.

감정의 앙금이 깊은 경우엔 화해가 쉽지 않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미국에서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다음 날 화해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1, 2년 전 사건을 잊지 않고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야구에선 벤치 클리어링도 경기의 일부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건 금물"이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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