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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에 폭동 날 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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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진이 강타한 뒤 사흘째인 29일에도 족자카르타 주민들의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여진과 함께 생필품과 의료시설 부족으로 인한 공포다.

중앙정부의 구호품은 도착하지 않았고, 여진은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은 야외에서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 중상자의 사망도 늘고 있다.

◆ 생필품 부족=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식당을 하는 와유디 헤루시(23)는 28일 오전 뒤늦게 지진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차를 몰아 고향인 족자카르타 반툴의 트르만 마을로 달려왔다. 1300㎞ 길을 13시간 동안 달려 가족이 사는 집에 도착해 보니 할머니와 누이동생.조카는 이미 숨져 있었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변을 당한 것이다.

"슬퍼할 여유가 없습니다. 곧바로 솔로 시로 가서 쌀과 반찬거리를 사와야 합니다." 500여 가구가 모두 이번 지진으로 무너진 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먹을 양식이 없어 물과 잡곡으로 연명하고 있다. 마을 이장 추티요노(46)는 "먹을 게 없습니다. 구청에서 어제 피해 주민 한 명당 라면 한 개와 쌀 500g을 보내준 게 전부"라며 울먹였다. 족자카르타 시내는 지진이 발생한 27일부터 사흘 동안 모든 상점과 상가가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생필품을 구하지 못한 주민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릴리히는 "생필품 부족 사태가 며칠만 더 계속되면 주민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외과 의사 태부족=족자카르타 중심부에 위치한 위로사반 시립병원은 시내에서 넷째로 큰 종합병원이다. 28일 오후 이곳에는 300여 명의 환자가 병원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 중 대부분은 지진으로 골절상을 당하거나 심한 타박상을 입은 중상자다. 그러나 수술을 해줄 의료진이 없어 중상자들을 수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리요 하르도나 병원장은 "의사 30명 중 집도할 수 있는 외과 의사는 단 한 명에 불과해 중상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호사인 하리는 "골절상을 입은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붕대와 치료약인데, 환자가 워낙 몰리다 보니 재고가 금세 떨어져 응급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진 발생 직후 사흘 동안 57명이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이 같은 사정은 족자카르타 시내 11개 종합병원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따라서 치료 중인 1000여 명 가운데 중상자들은 숨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반툴에서 한 어린이가 29일 구호품으로 받은 음식을 먹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 현재 6000여 명을 넘어섰다. [족자카르타 AP=연합뉴스]

◆ 여진 공포 계속=27일 새벽 지진 이후 여진은 29일 새벽까지도 수십 차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족자카르타 시내의 20여 개 대형 호텔 대부분이 손님을 받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손님을 받고 있다. 중심부에 위치한 머큐리에 호텔의 경우 투숙객들에게 '사고를 당해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투숙을 허용할 정도다. 이 호텔 종업원인 실리오유두는 "지진으로 호텔 내부에 금 간 곳이 많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여진에 대한 공포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족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25㎞ 떨어진 반장르주 반돌 마을의 주민 대부분은 사흘째 동네 축구장에 마련된 텐트에서 밤을 보냈다.

이 마을 주민인 투구 아루나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지 않았지만 언제 여진으로 붕괴할지 모른다"며 "500여 이재민들과 함께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집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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