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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각 정글서 매맞고 번 돈은 허망한가|「상처뿐인 영광」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프로복싱 전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김성준·34)의 충격적인 투신자살은 장정구(장정구·전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의 가정불화, 그리고 김환진(김환진·전WBA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의 여인폭행사건에 이은 연속적인 권투인의 비극으로 권투계는 걷잡을 수 없는 회의와 비탄에 빠져있다.
화려한 인기 속에 일확천금을 거둬들인 챔피언들은 무슨 이유로 은퇴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는가. 이는 대부분 불우한 생활속에 갑자기 찾아온 부와 명예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분히 무지와 태만으로 인해 심한 신체적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반면 김기수(김기수·전WBA주니어미들급챔피언) 유제두(유제두·전WBA주니어미들급챔피언) 김철호(김철호·전WBC슈퍼플라이급챔피언)등과 같이 철저한 자기관리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복싱인들도 더러 있다.
이같이 한때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꼽히던 챔피언들은 극도로 대조적인 양극상황을 보이고 있는데 그늘인생의 말로를 걷는 프로복서들이 훨씬 더 많다는 현실이 문제다.
김성준은 펀치드렁크로 실어증의 후유증 속에 사업은 물론 가정적으로도 원만치 못해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한국 최다인 15차 방어전으로 7억여원을 거둬들인 장정구는 가정불화로 「매맞고 번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링을 떠난 후엔 피땀흘려 번 돈으로 실컷 먹고 인생을 즐기겠다』던 그였다. 장은 현재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나 「사각의 정글」은 다시 돌아온 왕자에게 으레 인색했던 것이 그 동안의 경험이다.
비슷한 경우로 두 체급을 석권하며 4전5기의 신화를 남긴 홍수환(홍수환·전WBA밴텀 및 WBA주니어페더급 침피언)이 있다. 홍은 두뇌와 기술을 겸비하고 있어 롱런이 기대됐으나 역시 가수 O모양과의 스캔들 등 가정불화로 끝내 링을 떠나야 했다.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며 체육관을 개설, 후배양성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또 홍과 같은 시기에 WBC슈퍼밴텀급챔피언에 오른 염동균은 한때 체육관 운영·지방흥행·유흥업소 경영 등으로 전전했으나 모두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프로복서중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각광을 받은 박찬희(박찬희·전WBC플라이급챔피언)는 회사사원→체육관경영→서적할부업 등에 손댔으나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50년대 동양미들급 챔피언 강세철의 아들인 하드펀처 허버트강(전 동양라이트급챔피언)은 김성순보다 더욱 심한 펀치드렁크의 후유증 속에 한때 자포자기의 생활로 지탄도 받았다. 그러나 허버트강은 근래엔 포장마차 장사를 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불우한 챔피언들과는 달리 유능한 조력자나 후원자를 만난 챔피언들은 생활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권투재벌(?)로까지 불리는 김기수씨는 은퇴 후 명동에 다방을 개업하고 부동산업 등의 사업에도 수완을 발휘, 수십억대 부자로 성장했다.
김씨와는 달리 본업인 복싱에 계속 종사하며 돈을 벌어들인 유제두씨도 모범적인 챔프. 그는 체육관 운영과 복싱매니저로 성공,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세계챔피언 등극엔 실패했지만 복싱매니저로는 성공한 김현치씨(김현치·동아프러모션 사장)도 복서가 은퇴 후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를 모범적으로 예시해 주고 있는 케이스. 김씨는 복서로서는 드물게 흥행업에 성공, WBA로부터 88년 매니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공을 위한 김씨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권투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현재 KBC(한국권투위원회) 부회장을 맡고있는 이안사노씨(전 동양미들급챔피언)도 성공한 케이스.
그는 제주도에서 유흥업으로 기반을 닦아 서울까지 진출하는 등 탁월한 사업수완을 보이고 있으며 권투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 지난해에는 KBC부회장에 선임되는 등 권투와 인생모두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성공과 좌절의 행로를 걷는 프로복서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스스로 고통스런 인고와 절제의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과 건전한 결혼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권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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