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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2000 붕괴, 코스닥 5% 폭락…"정부 뭐하나" 개미들 아우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의 정부. 너무 두렵다. 내가 뽑았다는 사실이 후회된다."

28일 포털사이트 다음 증권 내 삼성전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IMF보다 더한 상황'이라는 제목의 이 글을 작성한 투자자는 "대통령과 정부의 무관심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며 "앞의 그 어떤 정부도 지금쯤 되면 증시안정대책 및 대국민 경제 재건 담화문 정도는 내놨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겁난다, 무섭다"고 썼다.

포털사이트 다음 증권 내 삼성전자 게시판 게시글 캡쳐

포털사이트 다음 증권 내 삼성전자 게시판 게시글 캡쳐

이 회원만이 아니었다. 지난 한 주, 연일 무너져내리는 증시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개미(개인 투자자)들은 주말 간 인터넷 게시판에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개미는 증시가 망가지는 동안 손 놓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정부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쏟아냈다.

네이버 증권 내 네이버 게시판에는 '문재인 대통령님, 주식시장이 침몰하는데 대책을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 작성자는 "현 상황은 정부의 경제 무정부주의, 반기업 정책, 주식시장 철저한 무관심과 외면이 합쳐진 결과"라며 "당장 긴급회의 소집하고 공매도 한시적 금지, 친기업정책, 주식 활성화 대책 등을 세워주십시오"라는 요구를 적었다.

국내 최대 주식 커뮤니티 팍스넷 게시판은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점철돼있었다. 불만의 대부분은 우리 정부의 대북 지원 의지를 향해있었다.

한 회원은 지난 27일 '북한 개발자금 200조'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그 돈으로 우리 주식 시장이나 살려라"고 밝혔다. 이 회원은 북한 개발자금 200조에 대한 별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으나 이는 전문가 집단이 추산하고 있는 통일비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학계와 북한 관련 전문기관 등은 북한 경제개발을 포함한 통일비용을 150조원에서 3100조원까지로 추산하고 있다.

코스피가 닷새째 하락하면서 31.10p(1.53%) 내린 1,996.05로 마감한 29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닷새째 하락하면서 31.10p(1.53%) 내린 1,996.05로 마감한 29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의견은 포털사이트 내 증권 게시판에서도 쉽게 목격됐다. 28일 네이버 증권 내 SK하이닉스 게시판에는 '무능한 거야? 뻔뻔한 거야?'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 작성자는 "최악의 취업난이 일어나고 소비, 투자, 수출, 고용 등 한국 경제 곳곳에 적(赤)신호가 켜졌다고 국민들은 불안해서 온통 난리들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외국 다니면서 김정은만 두둔하고 있다"고 썼다.

같은 날 네이버 금융의 삼성전자 게시판에서 또 다른 회원은 "코스피 2000 붕괴가 목전인데 정부의 대한민국 경제 살리기 의지는 없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회원은 게시글을 통해 "정부는 경제가 나빠지는 것도 모르고 취업자 수가 급감하는 것도 모른다"면서 "국민과 경제는 안중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시장에 투자심리가 얼어붙자 정부가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29일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증시 대책회의를 열고 5000억원의 증시 안정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돌아선 투자자의 마음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늦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에 개인투자자가 투매로 응수하며 증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날 코스피는 전거래일보다 1.54% 내린 1996.05에 장을 마감했다. 2016년 12월 7일(종가 1991.89) 이후 22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코스닥의 하락폭은 더 컸다. 전거래일보다 5.03% 내린 629.70에 장을 마쳤다. 지난해 8월14일(629.37) 이후 14개월만에 가장 낮다.

 뒤늦게 나선 정부에 대한 투자자의 시각은 냉랭하다.

 28일 팍스넷에 올라온 '연기금 금요일장 후반부터 갑자기 매수 시작'이라는 글에는 "왜? 이제야 정부가 나서냐!고 불만인 분들이 있는데 그동안은 전 세계 주식시장 동향상 정부가 일찍 나서봤자 이 급락 장세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다가 이제 전저점 박스권까지 하락했으며 기관들도 급한 물량은 로스컷 했다는 판단하에서 이제야 나서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날 팍스넷에 올라온 '금융투자 유관기관·증권사 대응 나선다'라는 글에도 역시 "참 빨리도 한다"며 "바닥 다 왔나보네...대책 회의하고 반등 나오면 자기들 공이라고 하겠지"라는 회의적 의견이 담겨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형성된 여론은 증시 폭락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게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최근 미중 무역 전쟁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증시가 고꾸라지는 상황 속에서 정부가 우리 증시만을 부양하기 위해 섣불리 시장에 개입했다간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무역전쟁 [중앙포토]

미중무역전쟁 [중앙포토]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지수가 폭락하는)이것은 현상으로 봐야지 이걸 본질로 보기는 어렵다"며 "사람들이 정서상으로 놀라는 부분은 있겠지만 (정부로선) 이 문제를 주식시장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기초체력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게시판 내에도 증시 폭락의 원인을 정부에게서 찾는 다수 여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 있다. 네이버 증권 SK하이닉스 게시판의 한 투자자는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코스피가 퍼지는 거라면 상해 종합지수가 4년 최저점까지 빠지는 이유는 뭐로 설명하겠냐,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위력이냐"면서 "누가 봐도 무역 전쟁의 여파"라고 했다.

 같은 게시판의 또 다른 투자자는 "정부 욕질하는 소리가 쩌렁쩌렁한데, 문재인 대통령이 언제 여러분에게 위험 덩어리인 주식하라고, 신용, 스탁론, 미수 등 빚내서 주식하라고 등 떠밀었냐"면서 "다들 돈에 미쳐서 돈 먹겠다고 자기가 좋아서 사놓고 주가 폭락해 빚 독촉 받으니까 문재인 대통령 욕질하는 건 졸렬한 거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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