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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몇 방울이면 … “탈모 유전자 91점, 별 위험 없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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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마크로젠과 건강한친구들이 지난달 선보인 유전자 맞춤형 홈 트레이닝 시연 장면. 유전자 분석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맞춤형 운동을 처방한다. [사진 마크로젠]

마크로젠과 건강한친구들이 지난달 선보인 유전자 맞춤형 홈 트레이닝 시연 장면. 유전자 분석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맞춤형 운동을 처방한다. [사진 마크로젠]

“당신의 중성지방 농도 유전자 점수는 34점. 유전적으로 적정 수준의 중성지방 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수치이며 식이조절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남성형 탈모 유전자 점수는 91점. 유전적으로 남성형 탈모에 대해 비교적 적은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환경도 아주 중요하니 평소 생활 관리도 함께 신경 써주세요.”

유전자 맞춤형 홈 트레이닝 체험 #체질량지수와 카페인대사 점수화 #국내선 12개 항목만 검사 가능해 #“DTC 시장 규제 풀어야 산업 발전”

기자가 체험한 유전자 맞춤형 홈 트레이닝 결과 중 일부다. 한국인의 평균 중성 지방농도 유전자 점수는 62점, 남성형 탈모 평균은 74점이다. 탈모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건강검진 때 중성지방 위험군으로 나온 것이 떠올랐다.

생명공학 기업 마크로젠과 헬스케어 기업 건강한친구들이 지난달 국내 최초로 선보인 유전자 맞춤형 홈 트레이닝 서비스를 내놨다. 중성 지방은 영양분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우리 몸이 저장해 놓는 것으로 과잉될 경우 비만 등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 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를 신청하면 유전자 검사 키트가 집으로 배달된다. 양쪽 턱 끝에 위치한 침샘을 자극한 뒤 혀를 입안에서 굴린 다음 엄지손가락만 한 키트에 침을 뱉어 흔들어 주면 끝이다. 이를 택배로 발송하면 유전자 분석이 시작된다. 분석에 필요한 시간은 대략 2주 정도.

유전자 맞춤 운동 처방 어떻게 이뤄지나

유전자 맞춤 운동 처방 어떻게 이뤄지나

타액 몇 방울에 담긴 유전자 정보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체질량지수와 공복혈당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물론이고 피부탄력·카페인 대사·남성형 탈모·원형 탈모 점수도 한국인 평균값과 비교할 수 있었다.

인간 유전자는 A(아데닌)·T(티민)·G(구아닌)·C(사이토신)로 불리는 4종류 염기가 서로 쌍을 이뤄 만들어진다. 인간 DNA는 이런 염기쌍 30억개로 이뤄진다. 물론 30억 염기쌍을 모두 분석해 맞춤형 운동을 처방하는 건 아니다. 서순정 마크로젠 책임연구원은 “인간 유전자 중 99.9%는 차이가 없다”며 “체질량지수와 관련된 유전자 등 특정 유전자를 골라 분석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유전자 분석에서 결과를 얻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DNA칩을 활용해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 그만큼 맞춤형 유전자 검사 비용도 줄고 있다. 유전자 분석을 포함한 맞춤형 홈 트레이닝 서비스 비용은 30만원 수준이다.

검사 키트를 발송한 다음 홈페이지에 접속해 평소 식습관과 운동 스타일을 묻는 설문 조사에 응했다. 카카오톡과 전화로 트레이너와 상담을 거친 후 맞춤형 운동 코스가 마련됐다. 트레이너가 유전자 검사 결과와 설문을 토대로 운동 영상을 맞춤 제작하는 식이다. 운동 영상은 홈 트레이닝에 걸맞게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해 집이나 직장에서 자유롭게 따라 할 수 있다.

안진필 건강한친구들 대표는 “중성 지방농도 유전자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 유산소 운동 위주로 처방하는 식”이라며 “운동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섞어 추천했다”고 말했다. 동영상 한 편은 20~30분. 추천 운동으로는 에어로빅과 복싱 등을 결합한 태보도 포함돼 있었다.

마크로젠의 유전자 검사 키트.

마크로젠의 유전자 검사 키트.

이런 유전자 맞춤형 상품 시장은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DTC·Direct to Consumer)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DTC 시장은 세계적으로 성장세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크레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656억원이던 세계 DTC 시장 규모는 2016년 1055억원으로 61% 성장했다. 2022년에는 4053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선 DTC 규제로 성장이 더디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12가지 항목에 대한 DTC만을 허용하고 있다”며 “이와 달리 해외에선 ‘안 되는 것 빼곤 모두 허용’하는 DTC 네거티브 규제로 성장 발판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의약품 처방과 관련된 검사에 대해서만 DTC를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파킨슨과 알츠하이머 등 10개 질환에 대한 DTC를 허용했다. FDA는 DTC 허용 조건을 까다롭게 달았지만 DTC 적용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DTC를 규제하는 법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정부는 2016년부터 DTC를 허용하고 있지만, 콜레스테롤과 혈당·탈모·피부 노화 등 12개 유전자 검사만 허용하고 있다. 암이나 치매 등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는 병원을 방문해야 허용된다. 풀 시퀀싱이라 불리는 유전자 전체 분석도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반면 미국 등에선 인터넷 쇼핑을 통해 키트를 구입해 궁금한 항목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DTC 항목을 늘리는 개편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DTC 유전자검사 제도개선 민관협의체’를 운영해 중대 질환 검사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대 질환을 제외하고 100여 가지 DTC 검사가 가능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췄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변수로 떠올라서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지난 8월 DTC 유전자 검사항목을 100가지 이상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안건을 폐기했다. 위원회가 심의한 DTC 제도 개선안에는 검사 항목을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확대하고, 기존 유전자 검사기관 신고제를 인증제로 바꾼다는 내용이 담겼었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해외에서는 DTC 시장이 커가고 있지만, 국내에선 규제에 막혀 제대로 된 산업 육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전자 검사 항목 14가지

●  건강 유전자(체질량지수, HDL콜레스테롤, LDL콜레스테롤, 중성지방농도, 공복혈당, 평균혈압)

●  피부 유전자(피부탄력, 색소침착, 피부노화, 카페인대사, 비타민C 대사)

●  헤어 유전자(남성형 탈모, 원형 탈모, 모발 굵기)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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