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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업계·보험회사 보험차량 수리비 싸고 시비 재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자동차정비업소들이 그동안 보험회사와 해오던 외상거래를 돌연 거부하고 나옴으로써 보험에 가입된 사고차량의 수리비를 둘러싼 보험업계와 정비업계사이의 시비가 재연되고 있다.
서울지역 3백18개 정비업체들로 구성된 서울정비사업조합은 1일 보험차량수리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오는 설날 이후부터는 보험회사가 수리견적에 대한 지불보증을 하거나 차주 (보험가입자)측이 직접 현금을 내지 않으면 보험차량의 수리를 맡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편 보험회사들도 이에 질세라(?)가입자가 청구하는 현금지불금액(영수증)중 보험책정가격에 해당하는 일부금액에 대해서만 보상해 줄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있어 중간에서 가입자들만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수리지연 등의 불편에 자칫 엉뚱한 부담까지 뒤집어쓸 형편이다.
서울지역정비업체들의 수리거부에는 서울이외 지역의 정비업체들까지 가세할 움직임인데다 분쟁 당사자인 손해보험회사들이 「선 보험료인상 후 대금현실화」를 계속 주장하며 임시방편으로 일부 협조업체에 거래를 집중시켜 「시위업소들」이 제풀에 꺾이기를 기다린다는 입장이어서 수리정비를 둘러싼 이같은 보험차량의 수난은 장기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86년말 정비업소들의 보험차량 수리거부와 현재까지 이렇다할 실마리를 못찾고 있는 자동차부품대리점들의 수리부품 공급중단사태에 이어 발생한 이번 보험·정비업계간분쟁은 이중가격·과다청구·합인결제 등 자동차보험을 둘러싼 관련업계간의 해묵은 병폐의 일단이 터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정비조합측의 인상주장의 골자는 현재일반차량 수리수가보다 낮게 적용되고 있는 보험차량수리비를 일반수가와 같게 지급해달라는 것.
예컨대 공임의 경우 교통부인가 일반수가가 시간당 5천4백80원인데 비해 보험회사와의 거래에서는 4천1백50원이 적용되고, 문짝을 고치는 경우도 일반수가로는 4시간 수리에 2만원인 반면보험수가는 2시간에 8천원이 책정되는 등 보험차량에 대해서는 「특별요금」이 적용돼왔는데 앞으로는 이를 일반수리비수준으로 인상, 단일화하겠다는 주장이다.
정비조합측은 이에 대해 『업계평균 40%의 임금인상과 30%이상의 자재값 상승 등을 감안할 때 비현실적인 요금의 인상조정은 불가피하며 2원화된 차등가격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따라 정비조합측은 공임 32%인상을 포함, 보험회사측에 일반수리비와 같도록 52·3%의 수가인상조정을 요구, 10여차례 접촉을 가졌으나 보험료인상을 전제로 14·9%선을 제시한 보험업계와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거의 관행처럼 굳어져온 보험회사들과의 거래에 불만이 커져있는 것은 자동차부품상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대·대우·기아 등 자동차3사의 지정대리점 1백32개 업소가 모인 부품대리점연합회는 지난해 12월19일을 기해 수리부품공급대금에 대한 할인(5%)거부, 결제기간 단축, 청구금액의 10∼30%를 일방삭감(부인)하는 거래관행 개선 등을 요구하며 보험회사에 대한 외상납품을 중단, 정비업소에서 차주에게 필요부품을 직접 사오도록 하는 등의 말썽을 빚었으나 현재로서는 그냥 유야무야돼 있는 상태다.
기아부품을 취급한다는 명진상회의 양해극씨는 『20% 판매마진에서 5%의 부품가 할인과 부가세부담, 오토바이 등의 운송비부담 등을 제하면 3%남짓 떨어지는데 거기서 다시 보험회사사정에 따라 청구금액중 심하게는 20∼30%씩을 후려치기(삭감)당하는 실정이라 보험거래를 하면 오히려 10∼20%씩 적자를 본다』고 밝혔다.
이같은 부품·정비업계의 반발에 대해 보험업계는 『대량거래 고객으로서 혜택이 제공되는건 당연하다』고 주장하면서 제반요금현실화에 앞서 보험료인상이 선행돼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화재의 김병돈 상무는 『업소측에 희생을 강요해온 것도 사실이나 보험료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일』이라며 인상현실화의 경우 가입자부담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11개 손보사들이 가입차량의 정비비로 지난해 지출한 보험료는 전체보험금 지출액의 l6·5%에 해당하는 9백90억원(87회계기준)으로 전년의 7백50억원에 비해 1년새 32%가 늘어난 금액이다.
자동차보험의 누적적자가 87년말 2천3백36억원에 달하고 있는 만큼 이처럼 급증하는 정비비 지출이 보험회사에 경영압박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피차 양보할 수 없는 이해 대립에서 이번 분규가 발생했고 쉽게 타결이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겉으로 드러난 양측의 논리만을 보면 결국 보험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 듯 싶다.
그러나 그에 앞서 생각해야할 것이 보험회사와 이들 관련업계간의 갈등이 자동차보험을 둘러싼 「제값」안주기·과다청구·할인결제의 악순환으로 심화돼 왔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업계 상호간의 뿌리깊은 불신과 불합리한 거래관행을 그대로 방치한 상태로는 보험료인상을 통한 가격현실화는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가입자를 볼모로 잡는 업계간 싸움이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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