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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행 봇물…무작정 편승은 금물-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88년 그로스 공산당 서기장의 집권 이후 헝가리에 퍼져가고 있는 개혁의 숨결은 사회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이와 함께 40여년 사회주의 체제에서 형성된 사회구조와 속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야기되는 갈등도 있다.
때문에 헝가리사람들은 현재 헝가리가 처해있는 국면을 하이브리드, 즉 여러 가지 흐름이 혼재해 있다고 말하고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다페스트시민은 『당의 집권체제가 없어지고 건전한 민주체제가 들어서야 개혁다운 개혁이 이루어질 것』 이라며 현재의 정부주도개혁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로스 서기장도 『권력을 나누는 것이지 권력을 이어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현지 배층의 사고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가미한 개혁의 행태는 부다페스트의 번화로인 바치 가를 다녀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경영방식을 도입한 상점 늘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곳에는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코닥필름 점이다.
최신 현상·인화기술로 30분내에 현상을 해주며 코닥필름 소지자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해준다.
아디다스 운동구점과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도 북적북적한다. 서방식 상술(서비스 위주), 쾌적한 분위기가 헝가리의 소비자들을 당장 사로 잡았다.
기존의 사회주의 방식을 고수하는 상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실업자가 생겨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남보다 열심히 일해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VCR 등 전자제품에 대한 구매 열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 물품을 사면 면세혜택을 받기 때문에 인근 국가, 주로 오스트리아로 상품구매차 가는 자동차행렬이 주말이면 국경지대에 북새통을 이룬다.
삼성의 부다페스트 지사장인 박승국씨는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헝가리인에게 파는 VCR가 연간 6만∼7만대 가량된다』 고 말했다.
고급호텔 중 하나인 베케호텔의 성인 쇼는 파리의 리도쇼 만큼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농도는 버금간다.
9홀 규모의 골프장도 지난해 생겼다. 여행자유화는 우리보다 1년 먼저인 지난해부터 실시되고 있다.
이같이 개혁정책에 따라 서구사회의 생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아직 정착되지 않은 인상이 짙다. 우선 생활필수품의 공급자체가 부족하다.
대표적인 것이 전화다. 신청 후 거의 10년이 돼야 설치될 정도다.
일본대사관의 한 직원은 전화 있는 집을 구하려다가 도저히 안 되자 『외교관이니까 일단 집을 구한 후에는 곧 전화가 가설될 것』이라는 중계업자(동영)의 말을 믿고 집을 구했으나 몇년째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주재 초대무역사무소 소장인 산도르·라니씨도 집에 전화가 없어 우리 대사관에 연락하려면 애를 먹고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소련이 동구권을 분할 통치하는 차원에서 헝가리는 자동차 생산을 못하게 했다. 이에 따라 라다라는 소제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차는 배기 장치가 제대로 안된데다 폐기규정이 없어 매연이 심하다.
공기 좋은데 살다가 부다페스트에 온 외국인들은 2∼3일만 지나면 코가 막힐 정도다.
또 건물이 오밀조밀한게 대부분이고 내부나 외부나 낡은게 많다. 자기 것이 아니니까 굳이 고치고 닦고. 조일 필요가 없다는 사회주의국가 국민들의 기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우리 상주 대표부 역시 사무실을 못 구해 애를 먹고 있다.
1천5백평방m정도(4백만평)의 건물을 구해 달라고 했더니 헝가리측은 농담으로 『우리 국회의사당을 가져가라』 고 하더라는 것이다.
헝가리 국민들은 오랜기간 국가가 의· 식· 주를 거의 해결해주다 보니 일정량의 일만 하는데 익숙해 있다.
식품점에서 물건을 사고 회계창구로 가 대금을 지불하려했더니 아가씨는 옆 창구로 가라고 눈짓했다. 손님들은 늘어서 있고 함께 일하면 몇분 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자기의 퇴근시간이 됐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다.
헝가리는 농산물이 풍부한 편이다. 따라서 정부가 그동안 비교적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인지 헤프게 소비하는 풍조가 없지 않다.
스웨덴을 다녀봤다는 한 시민은 『잘 사는 스웨덴 국민들은 빵을 먹다가 남기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훨씬 못사는 형가리 국민들은 대충 먹고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헝가리 국민과 우리는 같은 우릴 알타이어족이다.
타마스라는 미술가는 『우리의 역사가 슬프다. 그러나 심장에는 뜨거운 피가 있는게 헝가리 국민』이라고 읊조리면서 『헝가리인은 밝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속으로는 운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안희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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