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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5공 비리 수사 11개월 마무리|「백담사」빠져 미진한 끝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31일 발표된 검찰의 5공 비리수사 결과는 5공 비리 척결에 대한 6공 정부의 최종 의사표시인 셈이다.
이제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수용할 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지난해 2월 6공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5공 비리 문제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과 함께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고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이 됐었다.
특히 야당 권에서는 검찰수사가 막바지 단계에서 정치자금 등 5공의 구조적 핵심비리를 파헤치지 못하고 특정인물의 구속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들의 기대에 크게 어긋난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어 앞으로의 처리가 주목된다.
야권 3당은 정치자금문제 등 본질적인 5공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2월 국회에서 특별검사제도입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5공 망령」은 또 한차례 파란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감찰은 지난해 3욀 새마을비리를 시작으로 5공 비리 수사에 착수, 전두환 전대통령의 친·인척 10명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학봉 전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염보현 전 서울시장·차규헌 전 교통부장관·김종호 전 건설부장관·최열곤 전 서울시교육감등 지금까지 모두 47명을 구속하고 2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중 지난해 12월13일 5공 비리 특별수사부가 발족한 이후 구속된 사람은 장 전 안기부장과 이 전 민정수석 및 차·김 전장관 등 9명.
때문에 검찰은 장세동·이학봉 씨 등 5공 핵심인물들을 사법처리한데다 허문도씨 등은 앞으로 국회의 위증고발이 있을 경우 추가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장세동씨의 경우 10·26직후 김계원씨가 구속된 전례가 있지만 비 혁명적 상황에서 전직 안기부장이 구속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구속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수사 규모만 해도 검사 27명, 수사요원 1백8명 등 1백35명이 투입돼 건국 후 최대 규모였으며 그만큼 검찰의 의지가 확고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외형」에도 불구, 국민들이 수사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5공 비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두환·이순자 전대통령 부부와 정치자금관련 부분을 수사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같은 수사의 한계 때문에 구속대상자도 제한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치적 목적의 수사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뵀다.
결국 전씨 부부의 사법처리 제외는 친·인척과 주변인물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을 몰고 왔으며 정치자금부분을 제외시킴으로써 5공「금력」의 상징인물로 부각됐던 사람까지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와 함께 이번 수사과정에서 전직장관 등 여러 의혹사건 관련자들이 전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실무적인 업무처리만 수행했다고 진술했음에도 전씨를 상대로 한 최소한의 확인수사마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 한계에 얽매여 있음을 드러낸 것이어서 검찰 권 독립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검찰에 소환됐던 김만제 전부총리나 필리핀에서 우편진술서를 보내 온 정인용 전 재무부장관은 연합철강과 대한선주 정리과정에서 전전대통령이 최종 결정했다고 진술했었다.
수사외형뿐 아니라 구속 자들의 협의내용도 국민들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8년간의 세월이 흐른 데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미 노출된 사건들이어서 증거를 찾기 어려웠겠지만 국민들은 이들의 뇌물 등 권력형비리를 밝혀 주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장세동씨나 이학봉씨에게 적용된 죄명이 직권남용뿐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치부 등 개인비리가 없었다는 것을 인증 하는 셈이어서 오히려 여론의 표적이 돼 온 이들의 혐의를 벗겨 주기 위한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들의 개인재산 형성과정 등을 조사할 경우 자칫 정치적 보복이라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국민들은 이들이 상당한 치부를 했다는 의혹을 갖고 이 부분 역시 규명되길 기대했었다.
또 전 민청련의장 김근태씨 고문사건의 이근안 경감에 대해 독자적인 인지수사에 나선 것은 평가받을 만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검거치 못하고 있는 것도 이번 수사의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미진한 부분들을 앞으로 정치권에서 어떻게 풀어 나갈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혁명적 상황의 일들을 검찰이 외풍을 의식하지 않고 과거처럼「우격다짐」이 아닌 법 절차를 통해 처리했다는 긍정적인 면도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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