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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프린스턴서 만난 오펜하이머 … 과학자를 단련한 과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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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린스턴 핵융합 연구소인 프린스턴 플라즈마 물리연구소(PPPL)에서 보내온 편지는 합격 통지서였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뒤돌아보지 않고 얼른 이삿짐을 싸서 프린스턴으로 달려갔다. 1964년의 일이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68) #<20>학문적 긴장 자극한 프린스턴 #기업인 기부로 설립된 고등연구소 #과학자들에 최선의 연구환경 제공 #원폭 개발 오펜하이머 목요 세미나 #미국 지성 중심부 확인하려 참석 #날카로운 질문 오가며 학문적 긴장

아이비리그 대학인 프린스턴대가 자리 잡은 미국 동부 뉴저지주 프린스턴은 연구·교육 도시다. 당시 이 도시에 도착하자 중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풍경은 내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음을 일깨워줬다. 두려움 대신 기대와 흥분 속에서 짐을 풀었다. 프린스턴이라는 도시에서 꿈을 향한 행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수없이 쌓을 수 있었다.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위치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나소홀(Nassau Hall)의 모습. [사진 프린스턴대학교]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위치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나소홀(Nassau Hall)의 모습. [사진 프린스턴대학교]

이 도시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프린스턴대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10년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이다.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1856~1924년, 재임 1913~21년)이 이 대학 총장(1902~10년)을 지냈으니 한국과 인연이 깊다.

프린스턴은 고등연구소로도 유명하다. 의학자인 에이브러햄 플렉스너(1866~1959년) 박사가 뉴저지주 뉴어크의 백화점 경영주인 루이스 뱀버거(1855~1944년)와 부인 캐롤린(1864~1944년)의 기부를 받아 1930년 세운 연구기관이다. 기업인의 기부가 미국 과학기술자들의 연구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경우다. 순수 과학 분야 두뇌들이 강의 부담이나 연구비 걱정 없이 첨단 학문을 연구할 수 있게 해준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으로 망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년) 박사는 이곳에서 만년을 지내며 통일장 이론의 완성을 위해 연구했다. 헝가리 출신 수학자 존 폰 노이만(1903~57년) 박사는 이곳에서 양자역학과 현대 컴퓨터 개발을 위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미국 외교관이자 역사학자로 냉전 시대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주장했던 조지 캐넌(1904~2005년)도 50년대 초 18개월간 고등연구소에 머물렀다. 그는 소련 공산정권이 80년 이상은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해 ‘현자’로 불렸다.

이처럼 프린스턴은 명실상부한 미국 지성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나는 과학 연구에 비로소 눈뜰 수 있었으며 지적 호기심도 채울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과학 연구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는 PPPL에서 일하면서 인근의 고등연구소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여는 정기 학술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최고의 과학자로 이뤄진 미국 과학기술 중심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오펜하이머(오른쪽)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거친 곳이다.[중앙포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오펜하이머(오른쪽)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거친 곳이다.[중앙포토]

특히 미국 원폭 개발의 이론적 지도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67)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좌장인 오펜하이머 박사가 입에 파이프를 문 채 들어서야 세미나가 시작됐다. 강연이 끝나면 오펜하이머를 시작으로 질의응답에 진행됐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은 좌중을 압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을 더욱 강하게 단련하는 과정이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목요 세미나는 과학자의 자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오펜하이머의 치열한 삶은 과학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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