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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천자씩 자기소개서 썼는데…고용세습, 공기업 다 조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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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세습’ 의혹을 받는 서울교통공사 내부에서 “교통공사 퇴직자를 가족으로 둔 직원이 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지난 3월 교통공사가 ‘직원의 가족·친척 현황’을 조사할 당시에도 일부 직원들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가족 확인시 퇴직자까지 포함해야 한다’ ‘적폐 청산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또 ‘아들이 현직이고, 부모가 퇴직자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걱정하거나 ‘퇴직한 모 차장의 자녀도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제보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교통공사는 ‘재직자’로 한정해 조사한 후 유민봉 의원 측에 제출했다.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08명은 재직자의 가족이나 친척이다. 이 때문에 조사 대상을 퇴직자로 넓히면 인원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이란 의혹이 나온다. 교통공사의 한 직원은 “교통공사에선 한 해 평균 500명 정도가 퇴직한다”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 중에서 교통공사 퇴직자가 가족인 이들도 조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조사 때 ‘퇴직자’도 조사 요구 나와 #교통공사 “어렵다” 했다가 뒤늦게 명단 등장 #취준생들, 청와대 게시판에 “명백히 밝혀라” #평화당까지… 야 3당 고용세습 국정조사 공조

유 의원 측도 당초 이 같은 이유로 교통공사 측에 ‘퇴직자의 가족·친척도 파악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통공사는 “퇴직자는 조사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근로기준법령과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뒤늦게 정규직 전환 대상자인 퇴직자의 4촌 이내 친척 명단(7명)이 등장했다. 교통공사가 지난해 11월 ‘국회 자료 제출’ 시스템에 등록해둔 것을 유 의원 측이 지난 17일 발견한 것이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19일 “이들이 현재 재직 중인지는 확인해주기 어렵지만, 무기직은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재직 중이라면 정규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는 인사카드 등 몇 가지 자료를 활용해 퇴직자를 조사한 것으로 안다. 유 의원 측에 제출한 명단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자발적 조사였기 때문에 퇴직자를 조사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통공사의 한 직원은 “자발적 조사에서도 조사 대상을 ‘사내 가족’으로 한정하면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최소한 사내에서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되는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없이는 이 일이 명명백백하게 밝히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관영 원내대표.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관영 원내대표. [연합뉴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을 밝혀달라’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18일 기준 40여 건에 이른다. 한 청원자는 “취업 준비생들은 공부 시간도 재어가며 초 단위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몇천자의 자소서를 작성하고, 몇 권의 모의고사, 인·적성 책을 뒤져가며 열심히 하반기 채용을 준비한다. 모든 부분을 공명정대하게 밝혀라”는 글을 남겼다. 이 청원에는 1700여 명이 동참했다.

교통공사에서 촉발된 ‘고용세습’ 의혹은 공공 부문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도 일부 직원들의 친·인척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혜택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zero)’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곳이다. 이에 “공기업·공공기관의 정규직화 비리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에 대해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등 야 3당은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강도 높은 국정조사를 통해서 누가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아 갔는지 반드시 그 실체를 가려내 갈 것”이라며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오늘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 회의에서 “어제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해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바른미래당도 적절한 시기에 국정조사 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 요구서를 야당이 함께 낼 가능성에 대해 “상의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전날 홍성문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내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 비리는 공정한 경쟁을 기대했던 청년층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범죄행위”라며 “민주평화당은 이번 의혹에 대해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비롯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 것이며, 부정한 채용에 대해서는 끝까지 채용 무효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안효성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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