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데까지 해보자. 하늘이 도와주실 거야.”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63) #<15>미국서 통한 정근모식 공부법 #영어 전공책 20권 한 달 독파 어려워 #예상문제 50개 만들고 모범답안 준비 #책 내용 파악하고 자신감 향상에 도움 #식음전폐, 밤잠 줄이며 공부하며 대비 #걱정한 지도교수가 권한 수면제 사양 #시험장서 문제지 받아드니 온몸 전율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 도착하자마자 자격시험을 보게 된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온 특별장학생이 첫 시험에서 낙제해서 돌아갔다는 소리만은 듣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책을 들었지만, 눈앞은 여전히 캄캄할 수 밖에 없었다. 영어로 된 과학 서적 20여 권의 책을 한 달 안에 독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국인 전공자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낯선 단어나 과학용어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기도했다. 그런데 문득 꾀가 하나 떠올랐다.
“어차피 정상적으로는 책을 독파할 수 없으니 예상문제를 만들어 풀어보자.”
나는 그날부터 20여 권의 책을 차례로 넘기며 예상 문제를 만들어나갔다. 최종적으로 50개의 예상문제를 만들고 이 문제만큼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공부를 해나갔다.
C학점을 목표로 전력투구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밤잠도 설쳐가며 시험 준비에 몰두했다. 지도교수가 이 이야기를 듣고 건강이 걱정됐는지 나를 찾아왔다.
“미스터 정,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잠을 자지 않으면 막상 시험 보는 날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준비해왔으니 이걸 먹고 오늘은 잠을 좀 자도록 해요.”
지도교수가 수면제를 권했지만 사양했다. 그랬더니 이런 말을 했다.
“자격시험에서 A 학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우선은 어떻게 해서든 C 학점이라도 받도록 하세요.”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사실 밤을 새워 공부하는 목표가 C 학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쫓겨나지 않고, 나라 망신은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C 학점을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지도교수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대답만 하고 다시 시험 준비에 몰입했다. 절박하니 공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범답안 작성하며 자신감 얻어
그런데 예상문제를 만들고 모범답안을 작성하면서 내용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공부법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예상문제를 뽑는 과정에서 20여 권의 책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모범답안을 만들어가면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무턱대고 책을 읽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자신감이 생겨 심리적인 안정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공부 앞에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결과다.
학교 당국에선 시험에 모두 6문제가 출제되고 이 가운데 5문제를 풀면 만점이라고 했다. 나는 50개의 예상문제 중 적어도 2개는 나올 것으로 확신했고, 3개가 나온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험 당일 문제지를 보는 순간 피가 역류하는 듯한 흥분감과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6문제 중 4개가 예상문제와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2개 중 하나는 예상문제와 상당히 유사해 어느 정도는 답안을 쓸 수 있었다. 전혀 손을 댈 수 없는 문제는 딱 하나뿐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 속담은 헛말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정근모식 공부법'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이건 우연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의 경험은 그 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