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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최선희에 바람맞은 비건, 문 대통령 있는 유럽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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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비건 미 대북 특별대표와 실무협상 파트너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연합뉴스]

스티브 비건 미 대북 특별대표와 실무협상 파트너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연합뉴스]

스티브 비건 미 대북 특별대표가 협상 상대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에 또다시 바람을 맞고 15일(현지시간) 유럽으로 떠났다. 지난 7일 비건 대표 평양 방북 때는 최 부상이 앞서 출국해버려 “가장 빠른 시기에 만나자”는 초청장만 남긴 상태였다. 최 부상이 11일 평양으로 돌아온 뒤에도 실무협상 일정에 대해 답을 주지 않자 먼저 유럽방문에 나선 것이다.

16일 모스크바 거쳐 파리, 브뤼셀 EU본부 방문 #문 대통령 "제재 완화"에 "제재 유지" 단속 차원 #국무부 철도연결 "북핵 해결 별개 진전 안 된다" #유럽 실무협상 가능성, 국무부 "잡힌 일정 없다"

국무부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비건 특별대표가 16일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파리,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해 상대방들과 실무급 회담을 하기 위해 출국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그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향한 노력으로 동맹국·파트너들과 만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외를 방문할 것”이라며 “현시점에선 북한의 협상 상대방과 회담 일정이나 여행 일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단 유럽에서 최선희 부상과 만날 계획은 없다는 뜻이다. 타스통신은 앞서 “비건 특별대표는 16일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아태담당 외무차관과 만나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전면적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무협상의 답을 기다리던 비건 특별대표가 갑자기 유럽을 방문하는 것은 대북 제재공조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차원이란 분석이 나온다. 모스크바는 최선희 부상이 지난 9일 북ㆍ중ㆍ러 차관회담을 갖고 대북 제재완화를 논의한 곳이다. 파리ㆍ브뤼셀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완화를 위해 역할을 해달라”고 촉구했거나 18~19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방문이 예정된 지역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비건 특별대표의 유럽행은 남ㆍ북 제재 완화 캠페인에 맞서 이들 지역에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에게 직접 약속했던 핵 사찰의 세부 방식ㆍ일정을 협의할 실무협상에 지연 전략을 쓰는 데 대해 선(先)비핵화 결단을 압박하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도 해석된다.

미 국무부는 이날 남북이 11월 말~12월 초 철도·도로연결 사업 착공식을 갖기로 한 데 대해 "남북관계 개선이 북핵 프로그램 해결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모든 회원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금지한 특정상품을 포함한 유엔 제재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철도·도로 연결사업에 필요한 유엔 안보리 제재 완화에 대해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셈이다.

비건 특별대표가 유럽순방을 마치는 주말쯤 최선희 부상과 미국이 협상 장소로 제안한 오스트리아 빈 또는 스위스에서 북ㆍ미 실무협상을 시작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하지만 북한이 2차 정상회담이 중간선거 이후로 넘어간 상황에서 득 될 게 없는 실무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성사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이 최근 폼페이오 장관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시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원한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세부 핵사찰 방식을 놓고 '악마의 디테일 싸움'이 예고된 실무협상이어서 “일회성이 아니라 한 번에 2~3일씩, 수차례 연속 회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조율이 안 된 건 깜짝 회담 가능성은 낮은 이유다. 미국은 풍계리 사찰과 관련 6차례 핵실험에 사용된 핵무기 종류와 규모, 시험 결과를 요구하는 건 물론 영변 핵시설 플루토늄ㆍ우라늄 핵 물질 생산 명세를 요구할 계획이어서 북한으로선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다.

북ㆍ미 접촉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략적인 비건 대표는 당초 종전선언은 물론 대북 인도적 지원 등에 열려있었지만, 북한의 시간 끌기로 강경한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북한이 시간을 끈다면 미국도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비건 특별대표의 유럽행이 오히려 강경ㆍ압박 모드로의 변화 신호라는 뜻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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