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소금인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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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소금인형'- 류시화(1958~)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소금은 녹으면서 자기를 버리고 '당신'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소금은 없어지지 않는다. 물에 녹으면서도 자기를 잊거나, 잃지 않는다. 당신이 떠나고 나면, 소금은 미련 없이 다시 소금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빛이라면, 빛의 반대말은 어둠이 아니다. 빛의 반대말은 소금이다. 소금은 물과 함께 증발하지 않는다. 소금은 빛의 맨 아래에서, 물방울을 하늘로 다 올려 보낸 다음, 홀로 남는다. 그래서 빛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소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빛과 소금이다, 당신과 나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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