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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학이야기

고급 휘발유의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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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동차에 사용하는 휘발유(가솔린)는 탄소의 수가 5개에서 12개 정도인 수백 가지 탄화수소의 혼합물이다. 휘발유의 품질은 정유회사에서 사용하는 원유의 종류와 공정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는 자동차 성능과 환경 오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휘발유의 품질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정해 관리한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휘발유는 모두 정부의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것이다.

옥탄가는 휘발유의 점화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옥탄가가 낮을수록 쉽게 점화된다. 휘발유와 공기가 혼합된 연료가 실린더에서 빠른 속도로 압축되면 화학적인 이유 때문에 저절로 뜨거워지게 된다. 압축된 공기가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올 때 차가워지는 것과 반대 현상이다. 그런데 점화 플러그에서 점화를 시켜 주기 전에 휘발유에 불이 붙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피스톤이 충분히 올라가기 전에 연료가 폭발해 버리면 노킹이 일어나 자동차의 '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휘발유의 옥탄값은 본래 헵테인과 아이소옥테인이라는 탄화수소를 기준으로 정해졌지만, 요즘에는 1927년 미국에서 정한 '리서치법'에 따라 측정한 옥탄가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옥탄가가 91~94인 '일반 휘발유'와 94 이상인 '고급 휘발유'를 생산해 판매할 수 있다. 국산 자동차는 대부분 일반 휘발유를 사용하도록 조절돼 있다.

원유를 증류해 얻은 휘발유는 옥탄가가 너무 낮아 자동차에 사용하기 어렵다. 공업용 용제를 자동차에 넣으면 심한 노킹이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는 쉽게 점화되지 않는 화학물질을 넣어 옥탄가를 높게 만든 것이다.

유연(有鉛) 휘발유는 21년 미국의 토머스 미즐리가 개발했던 테트라에틸납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유연 휘발유의 납 성분이 심각한 대기오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휘발유와 함께 완전 연소되는 MTBE라는 유기 첨가제를 7% 정도 넣은 무연(無鉛) 휘발유가 개발됐다. MTBE는 자동차 배기가스 중의 일산화탄소를 줄여 주는 역할도 한다. 사탕수수 찌꺼기를 발효시켜 얻은 에탄올이나 메탄올을 이용해 옥탄가를 조절한 휘발유를 쓰는 나라도 있다.

휘발유의 옥탄가가 너무 낮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고 옥탄가가 높은 휘발유가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실린더 내부의 혼합 연료는 점화 플러그에 의해 강제로 점화되기 때문에 자동차의 성능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없다.

휘발유에 첨가하는 MTBE는 원유에서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값비싼 석유화학 제품이다. 옥탄가가 높을수록 휘발유값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 자동차에 필요한 것보다 높은 옥탄가의 휘발유를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높은 옥탄가의 휘발유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있다.

더욱이 주유소에서 새어 나온 휘발유의 MTBE가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MTBE는 발암물질일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고급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