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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들지만 … 아이가 희망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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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씨가 일터인 미용실에서 퇴근 전 아들과 놀아주고 있다.

"미혼모 기사는 꼭 얼굴.이름 가리고 나가데요. 제가 큰죄 지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아이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려 애쓰는데."

20대 미혼모인 김민주(27.서울 용산구 용산동)씨는 당당했다. 민주씨를 꿋꿋하게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의 원천은 동준(3)이다. "가진 건 없지만 동준이 커가면서 어느새 절 챙겨주기도 해요. 그때마다 '이게 가족이구나' 싶어 행복해요. 입양 안 보낸 걸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민주씨는 신용불량자다. 월수입은 보조미용사로 일을 배우며 받는 50만원과 기초생활보호 수급자로서 받는 21만원이 전부다. 그는 싱글맘을 위한 시설인 모자원에서 공과금만 내고 산다. 동준이는 무료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그가 동준이를 임신한 것은 2003년초. 사귀던 남자는 "낙태하거나 입양 보내라"고 했다. "배가 불러와 회사는 그만뒀고, 애아빠랑 결혼할 희망도 없고, 신용불량자라 빚밖에 없는 상태에서 계속 고민했어요. 아이를 직접 키울지, 입양 보낼지…."

민주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4세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커서는 아버지가 재혼한 뒤 집에서 쫓겨났다. "입양되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겠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친부모에 대해 고민하지 않겠어요? 아기 입양 보내놓고 제가 어떻게 살까 싶기도 하고."

민주씨 모자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임신 7개월에 미혼모 시설인 애란원에 들어갔다. 출산 뒤에는 자립을 준비하는 '중간의 집'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미용학원에 1년간 무료로 다녔다. 별도의 교육비를 내지 않고 미용실에 취업해 현장 실무를 익히고 있다. 모자원에도 때맞춰 입소했다.

"요즘 아이 키우는 데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라고들 해서 저도 처음에 걱정 참 많았어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너무 부모 욕심에 맞추려 안 하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민주씨는 "육아는 행복"이라며 "걱정들 말고 아이 낳으라"고 권했다.

민주씨는 그래도 살기 힘들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며 불임부부 수술비를 수백만원씩 지원한다는데, 그나마 있는 애라도 잘 크게 우리 같은 사람에게 수십만원이라도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미혼모 시설 입소자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의 69%가 양육을 포기한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이들 중 37%가 "경제적 지원이 있다면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고 했다. 여성부 관계자는 "미혼모의 10%만이 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혼모 시설 입소자는 2442명이었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아기들이 낙태되고 버려지는 실정에서 저출산 문제를 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미혼모는 아직 젊어 정보 이용과 변화에 대한 적응이 빠르고 재교육이 가능하다. 건강한 가정을 꾸려 세금 내고 당당하게 살아갈 잠재력이 있다"며 "이들에게 양육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것이 싫다는 사람들 애 낳으라는 정책보다 단기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 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박종근 사진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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