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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테러충격] 박 대표 불행 속 얻은 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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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 나흘째인 24일 오전 각 지역에서 올라온 한나라당 지방선거 후보들과 당원들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병실 앞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나라당 박근혜(사진) 대표 피습 사건은 그에게 불행과 시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습의 악몽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박근혜'가 위로로 삼을 만한 긍정적 전망이 적지 않다는 분석 때문이다.

◆ '대통령의 딸'서 탈피?=그간 박 대표는 '대통령의 딸' 이미지가 가장 강했다. 올 초 내일신문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란 질문에 가장 많은 18.9%의 응답자가 "박정희"라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을 떼어놓고는 박 대표를 생각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이 대목은 박 대표의 자산이자 부채였다. 박 전 대통령을 경제개발의 주역으로 기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박 대표의 매니어가 됐다. 하지만 '박정희=독재자'란 등식을 마음에 새긴 이들은 그의 장녀인 박 대표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이번 피습을 겪으며 박 대표는 명실상부한 독립적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나름대로 상황대처 능력도 보였다.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모습이었다. 고려대 함성득(대통령학) 교수는 "많은 이들이 박 대표를 '청와대 공주'라고만 봐왔다. 이번에 박 대표는 위기관리 능력과 함께 절제된 언어로 큰 선거를 앞둔 거대 야당을 이끄는 능력을 보여줬다. 테러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국민이 박 대표를 재발견하는 기회로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 '레이건 효과' 누릴까=이런 분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박 대표는 23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약진했다. MBC 조사에서 21.5%의 지지를 얻어 고건 전 총리(21.1%)와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다퉜다. 서울신문의 조사에선 이명박(26.8%)시장에 이어 2위(23.1%)였지만 지난해 말에 비해 9.1%포인트 수직상승했다. 리얼미터 조사에선 27.2%로 차이가 큰 1위였다. 이 시장은 21.9%, 고 전 총리는 17.7%였다.

이런 현상을 놓고 전문가들은 '레이건 효과'를 떠올린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981년 암살범에 총상을 당하고 수술받은 뒤 부인 낸시 여사에게 "내가 고개 숙이는 걸 잊었어(몸을 숙이면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는 뜻). 그 친구 비싼 양복에 구멍을 냈군"이라고 농담하는 의연함을 보였다. 이후 인기가 급상승했고 84년 재선에 성공했다. 경희대 김민전(정치학) 교수는 "박 대표가 피습 직후 유정복 비서실장에게 '저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라고 한 것도 이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레이건처럼 박 대표의 인기도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흉터' 극복이 관건=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는 결국 박 대표에게 달렸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도 생길 흉터를 극복해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대 남궁기(정신과) 교수는 "박 대표처럼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사건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피하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칫 대선 행보에서 필수인 대중 유세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박창일 원장은 23일 "정신과 치료 계획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필요 없을 것 같다.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측근인 한 의원도 "외모와 달리 정신력이 강한 만큼 잘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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