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역전쟁 화풀이' 中 해외쇼핑 단속···아모레 주가 15%↓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외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 관광객들.

해외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 관광객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지난 7월 미ㆍ중 양국이 서로에게 관세 폭탄을 터뜨리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한국 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中, 해외서 구입한 럭셔리 제품 단속 강화 #트렁크 샅샅이 뒤지는 영상 급속히 확산 #"해외 소비 국내로 돌려 경기 살릴 의도" #JP모건 "특히 한국서 사 오는 화장품 타깃" #"중국인 해외 쇼핑 줄면 매출 타격" 우려 #LVMH·케링·에스티로더·로레알 주가 하락

중국 정부가 해외에서 럭셔리 상품을 사서 귀국하는 중국인들을 엄중히 단속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한국을 오가는 ‘다이거우(代購)’ 업자가 주요 타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5일 보도했다.

다이거우는 중국인 관광객이나 해외 거주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럭셔리 제품을 사서 중국으로 들여와 이윤을 남기고 되파는 행위를 말한다. 구매대행이라고도 한다. 똑같은 제품이 중국보다 해외에서 가격이 30~40%쯤 싸기 때문에 다이거우가 성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이거우’가 주요 단속 대상이라고 JP모건은 분석했다. 한ㆍ중간 ‘다이거우’ 규모는 제법 크다. 다이거우를 통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럭셔리 제품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1.5%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연합뉴스]

국내 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연합뉴스]

JP모건은 특히 화장품 구매 단속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봤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해외에서 가장 많이 사 오는 제품이 화장품이고, 그중 한국산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분석회사 제프리스의 스테파니 위싱크 애널리스트는 “중국인 관광객의 해외 구매 1위 상품은 화장품”이라며 “해외에 나간 중국인의 50% 이상이 화장품을 사 온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아모레퍼시픽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틀간 주가가 15% 하락했다. 중국 정부의 단속 강화 소식이 알려지면서 4일과 5일 각각 13.99%, 1.1%가 빠졌다.

중국 정부가 세관 단속을 강화한 이유는 미ㆍ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가 모든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중국 정부는 관세 카드를 모두 소진한 상태다.

상하이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위안화 약세가 지속하는 등 경기 둔화 조짐이 보이자 중국 정부는 타개책으로 내수 진작을 내놓았다. 중국인의 해외 소비를 줄이고 중국 내 소비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엑세인BNP파리바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세관 단속 강화는 중국인의 소비를 본국으로 돌리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구입한 물건을 싣기 위해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기 중인 중국 보따리상. [연합뉴스]

한국에서 구입한 물건을 싣기 위해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기 중인 중국 보따리상. [연합뉴스]

중국 세관의 여행객 쇼핑 물품 단속 강화 소식은 위챗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나갔다. 공항에서 세관 직원들이 럭셔리 브랜드로 가득 채워진 중국인 귀국자들의 트렁크를 샅샅이 검사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면세 한도 금액인 5000위안(약 75만원)을 넘는 물품을 반입했는지 확인하는 장면이다.

해외에서 사 온 화장품에 관세 60%를 부과하고, 이를 지불한 세관 영수증이 소셜미디어에 돌기도 한다. 최근 위챗에는 9월 28일 자 상하이 푸동공항 세관 직인이 찍힌 영수증 사진이 올라왔다.

왕씨 성을 가진 이 쇼핑객은 설화수, 라메르, SK II의 스킨케어 화장품과 톰 포드 립스틱에 1만7100위안(약 280만원) 세금을 맞았다. 이들 제품의 관세 범위는 30~60%인데, 톰 포드 립스틱 10개에 대해 가장 높은 60% 관세가 부과됐다.

중국 국영 라디오 방송은 최근 푸동공항이 해외에서 산 물품에 대한 세관 검사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세관 당국자는 인터뷰에서 “귀국하는 중국인들은 여행자 면세 금액을 넘어서는 상품을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한국행 단체관광이 일부 허용된 가운데 관광객들이 5일 오후 서울 신세계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71205

중국 정부의 한국행 단체관광이 일부 허용된 가운데 관광객들이 5일 오후 서울 신세계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71205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ㆍ일본ㆍ홍콩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중국인의 명품 쇼핑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려 때문에 프랑스와 일본, 한국 등의 패션ㆍ화장품 기업 주가가 폭락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 주가는 5일 최고 3.6% 하락했다. 4일과 5일 이틀 연달아 주가가 내렸다. 주가 하락은 유럽으로 번졌다. 구찌ㆍ생로랑 등을 보유한 케링그룹 주가는 5.4%, 루이비통ㆍ디올 등을 보유한 LVMH그룹은 4.9% 폭락했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3.6% 빠졌다.

4일(현지시간) 뉴욕증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에서는 에스티로더와 코티 주가가 폭락했다. 에스티로더 주가는 5% 하락한 136.22달러, 코티 주가는 8% 가까이 빠져 11.51달러가 됐다.

금융회사 제프리스의 미츠코 미야사코 애널리스트는 “중국 소비자가 매출 증가율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화장품 기업의 주가는 중국 관련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컨설팅업체 베인에 따르면 중국인 소비자는 글로벌 럭셔리업계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이들 대부분은 중국이 아닌, 서울ㆍ도쿄ㆍ파리ㆍ뉴욕 등 여행지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구입한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 관광객들.

해외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 관광객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인의 럭셔리 브랜드 구입 붐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글로벌 럭셔리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UBS그룹은 지난 7월 “무역전쟁이 깊어지면 럭셔리 업계 주가는 최악의 경우 30%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케링그룹 주가 하락이 한 예다. 케링그룹이 보유한 구찌 브랜드는 중국인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해 주가가 올랐으나, 무역전쟁이 조짐을 보인 지난 6월 중순 이후 15% 하락했다.

중국 정부가 단속 강화를 계속하면 브랜드들의 마케팅 전략도 바뀔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사 오는 루이뷔통 가방, 구찌 로퍼가 단속 대상이 되면 유럽 고가 상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 등 대형 오프라인 매장에 투자할 유인이 적어진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