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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예술교육과 국가직무능력표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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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35면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먼저, 이 글은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과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우리 대학은 2~3년제 예술대학교로, 예술과 디자인 분야의 전공으로만 특화된 독특한 학교다. 취업률은 그리 높지 않고 산학 협력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윤창출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몰이해와 저평가를 감수하며 예술 분야의 교육에만 전념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어떤 면에서는 드물고, 여린 대학이다.

이런 우리 대학도 안간힘을 다해 따라가고 있는 교육부의 시책 중의 하나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의 적용이다. ‘국가’라는 말 때문에 근엄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조합어의 뜻은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태도 등의 내용을 국가가 체계화한 것”이라고 나라에서 만든 NCS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이 체계화의 저변에는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직무 능력과 학교 교육의 내용이 부합되어야 한다는 태도가 있다. NCS의 개발이 시작된 게 2002년이니 무려 16년을 매달린 일이다. 2016년까지 직업군에 따라 총 847개의 NCS 모듈이 개발 완료되었고, 분야에 따라서는 상당한 성과를 내는 모양이다. 청년 일자리가 화두인 시대에 학교와 현장을 연결해주는 NCS 같은 교육체계가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 수를 2300만개로 보면 그중에서 3분의 1가량이 없어지는 대신 7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2025년 이전에 현장에서 요구되는 직무능력은 완전히 바뀔 것이고, 현재의 NCS는 전면 수정될 확률이 높다. 1대1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인공지능(AI)을 예견하는 마당에 NCS 교육 모듈의 수정 개발 속도가 직업 환경의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시 NCS 개발에도 AI가 투입되는 건 아닐까.

삶의 향기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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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미래가 불확실한 NCS 교육 모듈을 예술계 대학도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그 시행과 관련된 교육부의 평가지표에 따라 학교의 명운이 좌우될 판이니 안 따라갈 수도 없다. NCS와 관련된 불만이 고조되자 학교마다 ‘맞춤형 NCS’를 개발하라는 차선책이 제시되긴 했지만, 예술교육을 ‘직무능력’과 연관시키는 관점이 변한 건 아니다.

물론 예술가라는 직업 특유의 직무능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표준화’하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표준화하는 순간 예술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관념을 깨는 것이 창의성인데 그것을 다시 표준화한다? 모순이다. 예술계열에는 표준화가 아니라 개별화가, 평균적 데이터가 아니라 창의적 직관이, 일반화된 모듈이 아니라 독창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과학자가 백조의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자르는 동안 시인은 백조를 보며 노래한다. “헤엄치는 눈송이 위/ 긴 긴 까만 물음표.” (파블로 네루다, 민용태 옮김). 이 물음표는 무한한 의미의 확장성을 품고 있다. 그 가능성을 꿈꾸는 것이 예술가의 직무능력이고, 그 꿈을 향한 모험심은 과학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나는 예술대학에 NCS나 기타 유사한 직무능력표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 2~3년제든 4년제든 예술대학은 예술대학이다. 예술대학들을 따로 묶어 독자적인 교육정책을 제시하는 대신 너희들은 2~3년제 직업교육기관이니 NCS 모듈을 적용시키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예술대생의 직무능력은 저하될 것이다.

마침 오늘 오후 예술대생들이 서울 시내에서 “교육부와 문체부 공동운영 예술교육기구 설립하라”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행진을 한다고 한다. 장관도 새로 임명되었고 하니 교육부가 귀를 기울여 새로운 예술 교육 정책을 제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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