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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술운동 내실화로 줄달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80년대 들어 우리 나라 학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이른바 「학술운동」이라 불리는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꿈틀거림을 들 수 있다.
이 학술운동은 대학으로 대표되는 우리 나라 학계가 「역사의 전망과 처방」이라는 「사회의 전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했다는 학계의 집단적 자기반성에서 비롯된 것.
이런 집단적 자기반성은 84년 한국산업사회연구회의 설립 이후 인문사회과학계 전 부문에서 소장학자들의 단체결성과 연합 움직임의 형태로 구체화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은 모든 학문의 중심이라 할 역사학계의 지난해 9월 한국역사연구회의 창립으로 일단 마무리되었고 이후 학술운동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변혁 지향적·민중 지향적 학문의 수립이라는 「문제의 제기」는 이루어졌지만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처방」이 없다는 반성이 본격화한 것이다.
한국역사연구회의 초대·회장 안병욱 교수(성심여대)는 이런 반성을 강조하는데 서슴없다.
『학자들의 몫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밝히고 그 과제를 달성할 처방과 안목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나라에서 문제의 제기를 담당해온 계층은 대학생 층이 유일합니다. 비극은 이들에게 처방을 제시할 「안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목이 저희들에게 있다고 자신할 수도 없습니다…. 80년대의 마지막 해인 올해 학술운동의 참여자들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사회의 변혁 방향은 정해졌는데 그것을 어떻게 창조적인 방법으로 성취해나갈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위기감입니다.』 안교수의 이러한 고백은 학술운동의 내실화가 출발되었음을 알리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역사연구회의 내실화 작업은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9월 설립 이후 하나둘씩 속속 구성된 각 연구팀들이 「19C 정치사」 「현대 사학사」 「향촌사회의 권력구조」 「토지제도」 「한말 유교지식인의 사상과 행동」「3·1 운동」 「원산총파업」등을 소재로 집중적 연구를 진행중이고 1∼2개월 이내에 7∼8개의 연구팀들이 추가로 결성될 예정이다.
이들 중 「3·1운동」연구는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3·1운동을 기념해 2월말께 연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그밖에도 현재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진보적 시각에서 쓰는 대학교재용 『한국사』가 2월중 출간될 예정이고 10월께에는 대규모의 심포지엄도 개최될 예정.
또 올해는 계간으로 「역사학의 대중화와 내실화」를 도모하는 학회지도 펴낼 예정이다.
내용성을 획득하려는 학술운동의 새로운 모색은 비단 한국역사연구회에만 국한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10여개에 달하는 학문 각 분야의 진보적 소장학자단체들은 지난해 6월의 연합심포지엄과 서관모 교수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0월 결성된 학술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단체별 또는 학제간 연합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 제기된 당면과제의 분석과 처방을 내놓기 위해 활발한 토론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올 6월로 예정된 제2회 연합심포지엄에서 일부가 소개될 예정이다.
학술단체협의회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 안 교수는 학술운동의 미래를 이렇게 전망했다.
『주변을 돌아볼 때 지구상에서 수백 민족 가운데 오늘날 20세기의 후반에 우리만큼 역사의 올바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끊임없이 운동하는 나라가 어디 또 있습니까? 우리만큼 역사 변혁을 위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이루어 가는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이 모든 희생과 노력은 공들인 만큼 보답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빛나는 승리일 뿐 아니겠습니까?』(한국역사연구회장 초대 취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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