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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결성-「보·혁구도」부상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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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계가 보수와 진보, 우와 좌의 이념대립 양상으로 점차 계급성을 드러내가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이 「체제수호」라는 이름으로 보수성을 드러내고 공화당은 아예 보수본류를 자처하는등 보수색깔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 비해 평민·민주당은 좀 어정쩡하다. 민주당은 「보수적 개혁주의」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판이고 평민당은 「개혁주의」를 표방해 진보성을 지향했지만 그렇다고 「혁신」이란 상표를 붙이기는 싫어하고 있다.
아직은 「혁신」이란 노선에 대해서는 기피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야가 전민련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라는 진보성을 띤 광범한 연대기구를 조직하고 나섬에 따라 새로운 혁신적 정당의 등장과 그로 인한 정계의 보·혁구도개편 가능성이 주목을 받게 됐다.
재야운동권 세력들은 지난 두차례 선거에서 분열상을 보이자 기존재야단체들의 명망가적 한계를 극복, 기층민중에 중심을 둔 통일조직을 건설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전민련을 결성키로 했다.
지난해 9월2일 준비위를 결성해 현재 16개 대표단체·1백50여개 개별단체의 참가를 확정한 전민련은 오는21일 1천명규모의 대의원대회를 통해 창립하고 곧 이어 중앙위원회도 열어 본격적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민련에는 현재 서울·인천·부산·강원·충남·전남·제주·대구경북등 8개지역 협의체가 참가했으며 경남을 제외한 경기북부·경기남부·전북·충북등도 창립전에는 가입, 전국조직망을 갖출 전망이다.
부문운동별로는 전국노동운동협의회, 전국농민운동연합준비위, 자주민주통일국민회의,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기독교사회운동협의회,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여성운동단체연합등 8개단체가 참가하고 있고 특히 창립전에 학생회연합조직등도 흡수, 20여개 대표단체·2백여개 개별단체 규모의 거대한 동원력을 가진 명실공히 통일된 재야운동조직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전민련은 지난해 12월22일 임시집행부를 구성, 사무처장에 이부영 전서울민주투쟁연합의장, 정책실장에 김근태 전민청련의장, 대회실무소위원장겸 대변인에 이재오 서울민중연합의장을 각각 임명했다.
이밖에 지난연말 석방된 장기표 전민통련정책실장도 핵심논의구조에 참여하고 있다.
또 임시집행부는 총무국장 김희택 (민청련의장) , 투쟁기획국장 박계동·최종건, 선전국장 김승오 (전국노동운동단체연합운영위원) , 교육국장 유상덕씨등이나 대회준비위의 규약소위원장 이호웅 (인천민족민주운동연합대표) , 조직소위원장 이영순 (전국노동운동단체연합회장) 씨등도 전민련창설의 주도 멤버다.
그러나 공동의장단 구성에 있어선 아직까지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국민적 상징성을 높이고 분열된 운동의 통합의미를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문익환·계훈제·백기완씨등 원로세대를 내세우자는 견해와 지향성과 운동의 새로운 건설을 위해 지역및 부문의 실질대표로 구성하자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있고 이를 혼합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순수」 사회운동 1세대인 김근태·이부영·장기표씨등이 대표로 선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전민련은 89년의 주요사업을△노동법개정·임금투쟁·농협민주화등 민중운동과의 연대투쟁△조국통일문제에 대한 방향제시△사회 각부문의 법적·제도적 민주화운동등 3가지로 설정하고 정치문제로 전두환·이순자씨 처리등 5공청산문제를 노태우정권 불신임투쟁으로 연결할 생각이다.
문제는 전민련이 「정치세력화」할 것인가의 여부다.
정당결성을 전제로한 조직이라는 추측에 대해 핵심관계자들은 펄쩍 뛰며 부인했으나 『권력이 독점된 상태에서 진보정당을 해봤자 효과가 없을 것이란 견해와 합법성이 주어지면 그 공간을 차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혼재하고 있다』고 실토하고 있어 정치세력화할 가능성을 배제키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전민련준비위 이부영 사무처장은 『보수일색의 기존 정치집단으로서는 분단모순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정당형태건, 아니건 이같은 욕구를 싸안을 조직이 필요하다』고 조직의 진보성을 강조했다.
이런 얘기들은 빠른 시일내에 정당조직화하거나 제도권 정치속으로 진입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민련이 정치 조직화 문제에 확실한 노선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상이한 입장을 가진 재야단체를 수용했고 한겨레당과 민중의 당의 통합체인 「진보정당결성을 위한 정치운동연합」(진보정치연합)도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연합은 전민련 결성에도 동참하고 있으나 아직은 「참관단체」로 머무르기로 했는데 이는 『지역·부문단체에서 정당창당을 표방하는 단체를 정식 참가단체로 인정할수 있느냐는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미 전민련 핵심부에서는 보수정당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진보정치연합을 그 전담부서로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정치연합은 전민련내부가 정리되는대로 향후 재신임·지자제문제등과 연계해 정치운동을 전개하고 그 힘을 기초로 올 하반기께 재야 정치세력화 부분과 기존 혁신계조직및 뜻을 같이하는 현역의원을 영입, 창당할 예정이어서 그때 전민련의 정치조직화 여부도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민련규약에는 「대의원 과반수 참석에 3분의2의 찬성」이 있으면 선거참여가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어 언제든 정치조직으로 변신할 수는 있다.
전민련의 등장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평민당이다. 「평민당개조론」이란 명분으로「비판적 지지」를 했던 재야입당파는 지난해말 구속자 석방을 계기로 2차 입당을 추진, 당내 주도권을 장악할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보도되자 기존 당료파는 즉각 반발했고 김대중총재 역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재야입당은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김대중총재가 9일 세미나에서 당노선을 개혁주의라고 선언하고 보·혁구분을 「파시스트적 사이비 보수세력의 책략」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런 내부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평민당내 재야 입당파인 문동환·이해찬의원등 평민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재야 일각에서는 보수안정 기조가 우세한 지금 정세에서 진보세력이 정치조직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논리도 강하다.
더우기 집권세력이 진보세력을 「체제전복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혁신세력」이 합법적으로 존재할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세력화 여부에 관계없이 통일적 민중운동조직으로서 전민련의 등장은 장기적으로 정치권을 보·혁으로 가르는 새로운 정치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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