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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트럼프 파헤치면 대박친다’…미국 출판시장의 新 성공 법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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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서점의 서가에 놓인 밥 우드워드의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AFP=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서점의 서가에 놓인 밥 우드워드의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AFP=연합뉴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로 알려진 미 워싱턴포스트(WP)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흥행 기세가 무섭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 주요 대외 현안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성, 무지(無知)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이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무려 110만 권이 팔려나갔지요.

 책 출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우드워드의 책은 매티스 장관과 켈리 비서실장에 의해 부정당했다. 그들의 발언은 조작됐고, 대중을 상대로 한 사기”라며 “우드워드는 민주당 공작원인가? (중간선거) 타이밍을 노렸나?”라고 맹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반격’ 덕분인지 대중의 관심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출판사인 사이먼앤슈스터 측은 기록적인 판매량을 기대하고 있지요.

 트럼프 대통령 취임 2년째인 올해 들어, 이른바 ‘반(反)트럼프’ 도서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작은 지난 1월에 출간된 칼럼니스트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 그리고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더 높은 충성심』 등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책의 출판사는 영국의 맥밀란이지요.)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 [EPA=연합뉴스]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 [EPA=연합뉴스]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백악관 내부 사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냈지요. 저서의 ‘등장 인물’이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전·현직 측근이다보니, 대중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적지않은 반 트럼프 도서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불륜관계 이후 ‘입막음성 거래’ 법적 공방으로 이름이 알려진 전직 포르노 배우 스테파니 클리포드(예명 스토미 대니얼스)의 『전면 폭로(Full Disclosure)』가 내달 2일(현지시간) 출간될 계획이지요.

들썩이는 미국 출판시장…“반트럼프 도서가 판매량 견인”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더 높은 충성심』. [AP=연합뉴스]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더 높은 충성심』. [AP=연합뉴스]

 잇따른 반트럼프 도서 출간에 미국 출판시장은 때아닌 활황입니다. 도서 판매량 분석기관인 NPD 북스캔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 종이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4% 증가했습니다. 이 기관은 “100만 권(종이책)이 팔린 『화염과 분노(마이클 울프)』과 58만 권이 판매된 『더 높은 충성심』이 종이책 판매량 증가를 견인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반트럼프 도서는 판매량 ‘증가율’도 빠른 편입니다. 같은 논픽션 부문의 다른 베스트셀러를 압도할 정도이지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미국 매체 아틀라스가 NPD 북스캔의 데이터를 교차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화염과 분노』의 첫 7주 간 판매 증가율은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의 『옵션 B(Option B)』,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맞상대였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회고록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Happened)』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칼럼니스트 마이클 울프가 펴낸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의 첫 7주 간 판매량 증가율은 같은 시기 경쟁 서적인 셰릴 샌드버그의 『옵션 B(Option B)』, 힐러리 클린턴의 회고록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Happened)』를 크게 뛰어넘었다. [아틀라스]

칼럼니스트 마이클 울프가 펴낸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의 첫 7주 간 판매량 증가율은 같은 시기 경쟁 서적인 셰릴 샌드버그의 『옵션 B(Option B)』, 힐러리 클린턴의 회고록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Happened)』를 크게 뛰어넘었다. [아틀라스]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없는 도서의 판매량은 주춤하게 되는 것이지요. CNN의 미디어 담당 선임기자인 브라이언 스텔터는 “트럼프가 책 판매량에 끼치는 영향은 다각적(multidimensional)이다”며 “이제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그가 비(非)정치 도서의 판매량에 피해를 입힐지 걱정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미국 뉴욕타임즈(NYT)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명단에 오른 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반트럼프’ 도서라고 합니다. NYT가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트럼프의 비난 트윗, ‘밀리언셀러 보증수표’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 출판업계에는 ‘①반트럼프 도서 출간→②트럼프의 트위터 비난→③대중 관심 급증’으로 이어지는 ‘3단계 히트 법칙’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쉽게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성 트윗’이 미국 출판업계의 ‘밀리언셀러 보증수표’가 된 셈이지요. 게다가 각 도서에 등장하는 전·현직 참모가 책 내용을 반박하게 되면 홍보 효과는 더욱 커지는 셈입니다.

 이 정설이 맞는지 살펴볼까요. 한번 ‘친(親)트럼프’ 도서가 출간됐다고 가정해보지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 비난을 하는 대신, 대중과 지지자를 향해 책 구매를 독려한다면 이 책은 잘 팔릴까요? 똑같이 트위터를 통해 말이지요. 정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초대 대변인 출신인 숀 스파이서는 지난 7월 발간한 『더 브리핑』을 낸 바 있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쓴 것이지요. 하지만 판매 기록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발간 첫 주 6000부 판매에 그친 것이지요. 같은 기간(일주일) 110만 부가 팔려나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책 출간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당장 구입하라!(7월 1일)”며 지원 사격까지 나섰지만, 효과는 미미했답니다.

 트럼프의 트윗 이틀만인 3일 CNN 선임기자인 브라이언 스텔터는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가 지지자들을 독려한 이후 책 판매량 순위는 2만 위에서 2000위에 오르는데 그쳤다. 베스트셀러 반열엔 근처도 못 갔다”며 반면 “트럼프가 공격한(against) 울프와 코미의 책은 모두 1위를 차지했다”고 비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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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모든 반트럼프 도서가 대박을 치는 건 아닙니다. 지난 8월 출간된 오머로사 매니골트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의 『정신나간(Unhinged』은 출간 후 첫 2주 간 약 5만권 팔리는데 그쳤지요. 이에 대해 WP는 “워싱턴 정가와 맞붙을 만큼 내용이 알차지 않다(WP)”고 지적합니다. ‘반트럼프’라는 히트 공식을 따르더라도, 책의 ‘알맹이’가 쏙 빠졌다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제 미국 출판업계의 관심은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판매량이 『화염과 분노』을 뛰어넘을지 여부에 쏠려 있습니다. 초기 판매량만 놓고 본다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판매량이 다소 우세해 보이는데요.

미 포브스는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는 출간 첫 주에 110만 부가 팔려나간 반면, 『화염과 분노』는 첫 3주만에 170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전했습니다. 즉, ‘일주일치’만 놓고보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판매량이 더 많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미국 종이책 시장 매출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란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신간’인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가 더 많이 팔릴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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