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학/교양] '캘빈 클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패션학교 졸업앨범에 '앨빈' 클라인이라고 이름이 잘못 인쇄됐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만큼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가난한 이민자 아들일 뿐이었다. 이때만 해도 아무도 그가 연 매출 30억 달러의 패션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할 미국의 대표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뉴욕 포스트의 패션 비즈니스 담당 기자인 리사 마시가 쓴 '캘빈 클라인'은 손재주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낸 캘빈 클라인의 전기다. 그동안 온갖 자극적인 소문으로 가득찬 그의 사생활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그러나 이 책은 캘빈 클라인과의 직접대면 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과의 충실한 인터뷰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비즈니스 전기다. 그러나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다. 그의 사업 성공기 자체가 한 편의 소설처럼 드라마틱하고, 그의 삶은 그보다 더 극적이다.

약물과 섹스.모델들과의 광란의 파티에 탐닉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사무실 직원들이 쓰는 종이클립 색깔을 정해주고, 자신이 매일 마시는 커피와 우유의 최적 비율을 맞추기 위해 주방 벽에 색상 견본책까지 걸어놓는 강박적인 완벽주의자. 이 책은 이처럼 모순으로 가득 찬 캘빈 클라인의 성격이 그의 작품과 삶에 어떻게 투영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캘빈 클라인은 현대적이고 멋진, 그리고 가장 미국적인 디자인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디자인은 패션 비즈니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새로 나올 때마다 논쟁을 유발한 그의 광고가 이런 사실을 잘 드러낸다.

1980년 당시 10대였던 브룩 쉴즈를 모델로 세운 '나와 캘빈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라는 도발적인 청바지 광고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알몸의 남녀 모델이 뒹구는 향수 '옵세션'광고, 그리고 아동 포르노물과 거식증.마약 이미지를 풍기는 모델 케이트 모스를 세운 광고는 늘 여론을 들끓게 했다.

그러나 이 영리한 기업가의 광고는 패션과 향수업계 종사자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제시했다.

캘빈 클라인의 경쟁자 랄프 로렌의 이름과 캘빈 클라인사의 홍보담당자였다가 뒷날 케네디 주니어의 아내가 된 캐롤린 베셋 등 유명인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