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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사립박물관 지원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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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번듯한 시설과 풍부한 유물을 갖춘 곳을 원한다면 국공립박물관을 찾는 게 좋다. 그런데 이들은 숫자도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한두 번쯤은 가봤던 곳이기 십상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각지에 산재한 사립박물관들을 권하고 싶다. 소장 유물의 가짓수에서는 국공립박물관에 비해 떨어지지만 전문화.특성화돼 있다. 문제는 사립박물관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국공립박물관들은 운영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지만 사립박물관들은 설립자 개인이 자체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 열악한 재정 형편 때문에 평생 애지중지 모은 유물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데다 과학적 보존.관리는 엄두도 못 낸다. 게다가 부실한 전시환경.서비스로 관람객을 실망시키기 일쑤다.

우선 유물 정리가 시급하다. 유물 정리는 박물관의 제반 업무 중에서 기초작업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물의 보존과 관리도 정리에서 출발한다. 전시실과 수장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유물들에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것, 이것은 마치 사람이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는 것과 같다.

그동안 정부는 사립박물관의 유물 정리와 전산화를 위해 몇 가지 사업을 추진해 왔다. 첫째는 2000년부터 시행 중인 '국가문화유산 서비스 구축사업'이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주관하고 국공립.사립.대학박물관들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전산망을 통해 상호 연계돼 있다.

둘째로 2004~2005년 2년 동안 사립박물관들은 '수장고 보강사업'의 일환으로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유물을 자체적으로 정리했다. 아쉽게도 이 사업은 현실적인 벽에 부닥쳐 올해부터 복권기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

셋째로 지난해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 생활사박물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하고 있는 '유물 정리 지원사업'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년에 4개 사립박물관을 선정해 소속 직원들을 파견, 그 지역에 상주시키면서 유물 정리와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비용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모두 부담하고 있다. 우리 박물관도 그 덕분에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목가구를 중심으로 유물 정리와 함께 DB 구축을 마쳤다. 사립박물관 입장에서는 환골탈태해 제대로 된 박물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는 게 바로 이 사업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 사업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들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사립박물관 운영을 위한 전문 인력 인건비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확대해야겠지만, 당장은 국립민속박물관을 중심으로 지역 생활사박물관 유물 정리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사립박물관은 사유재산이지만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이미 공공재산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사립박물관 운영자가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힘들어 하고 있다. 이 나라를 진정 '문화로 부강하고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으로 만들려면 이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박종민 온양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