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최치원·이상설·이벽 … 온몸으로 시대를 껴안은 천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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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생각의 나무, 349쪽, 1만4000원

역사를 살펴보면 기막힌 재능과 번득이는 재치를 갖춘 천재라고 해서 모두 떵떵거리고 산 건 아니다. 사실 천재라고 해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도 소수에 불과하다. 재주는 삶의 씨줄일 뿐이어서 존경받는 인생이라는 베를 짜려면 별도의 날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역사저술가로 이름을 알린 세 명의 지은이들은 한국 역사에서 천재로 불렸던 여러 사람의 삶을 되새김질하면서 그 날줄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바로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이다. 현실의 모순을 누구보다 먼저 깨치고 이에 맞서 용기있게 싸운 이들이 진정한 천재라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해 배를 불리는 데만 재주를 쓴다면 천재가 무슨 소용이냐는 게 지은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당나라 유학 8년 만에 과거에 붙었으나 고국인 신라에서는 골품제의 한계로 뜻을 펴지 못한 최치원을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는 힘든 인생을 살았다. 27세에 성균관 관장을 지냈으나 을사조약으로 잃은 국권을 찾기 위해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된 이상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이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지닌 재주로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한국 천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이다.

세계 최초로 사제나 전도사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믿음을 받아들인 한국 가톨릭의 힘도 이런 의지와 신념의 인물들에서 나왔다는 부분은 자못 흥미롭다. 선비 이승훈이 베이징의 천주교당에서 한국인 최초로 가톨릭 영세를 받은 것은 이벽이라는 혜안의 선비가 뒤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책은 전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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