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디지털국회] 자기 밥그릇에 무심한 정치인 나오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텔레비전에서 서울시장 후보들이 어린 시절에 가난하게 살았다는 설명과 함께 그때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듣자 하니 변호사 출신의 여야 후보 두 사람은 월수입이 1천5백만원이라고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사진은 후보들의 홍보 자료일 것이다.
사진 홍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성공했다는 것, 그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능력이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대개 중년 나이를 넘어 장년으로 갈수록 많이 하는 것이 지난날의 가난 이야기다. 너무 가난해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관리도 되고, 전문분야의 유명인이 되고, 또는 기업을 일으켜서 성공했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가난이 그들에게만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은 1960년대 초의 모습들이 아닌가 싶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보릿고개에 굶주림으로 허덕이던 시절엔 거의 애옥살이 삶을 살았지, 그들만이 가난했던 게 아니다. 가난한 농업국에서 부자라고 해봐야 땅을 많이 가져 농사 수입의 부(富)를 누리는 정도인데, 그런 부자들이 전체 인구의 얼마나 되었겠는가.
서울시장 후보들의 어린 시절이 그러하듯 국민 대부분이 가난에 허덕였다.

역사의 분기점인 1961년 5.16혁명이 일어났을 때의 형편을 보자. 그해 봄, 곡창지대인 전남에서만 16만4천호의 94만6천명이 대책없이 굶고 있었다. 이른바 절량(絶糧) 농민들이다. 초근목피를 찾아 산으로 들로 헤매는 사람에다 부황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요, 강원도 화전민들은 하루를 삶은 감자 한두개로 때우고 긴 겨울을 잠으로 보내는 ‘인간 동면(冬眠)’의 기막힌 삶을 살았다. 도시를 배회하는 실업자가 수백만에, 병원 앞에는 피를 팔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던 절망적인 가난이었다.

가난에 ‘복수’하는 능력은 장하지만

원수 같은 가난이라고 했다. 원수에게 복수하듯 우리네는 가난에 대한 ‘복수 심리’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진 것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몸 부서져라 덤벼들어 국가적 가난을 이겨냈고, 산업화의 성공으로 장삼이사(張三李四)들도 능력 발휘하여 소원풀이하듯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원인을 옛날에 가마 타고 행차하던 양반 기분을 내고 싶은 심리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이야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웃어 넘길 일만도 아닌 것이, 호화 주택에 대형 아파트, 고급 제품에 호화 분묘까지 부를 과시하는 것이 지난날의 가난에 대한 복수 심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돈 좀 벌었다고 눈 뜨고 못봐줄 만큼 거들먹거리는 행세를 보면 “언제부터 잘 살았다고…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소리 내지르는 것도 “두고 보자. 나도 돈 벌고 출세해서 본때를 보여주마”라는 복수 심리의 발로일 것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평생 밥그릇을 끼고 사는 것은 같다. 줄창 밥그릇 채우기에 허우적거리고 거기에 희로애락이 어우러지게 마련이지만,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이 고작 그것이라면 참 허망한 노릇이 아닐 수도 없다.

5.31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대체로 먹고 살 만한 사람들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가난에 복수하는 능력도 있고 이런저런 분야로 출세를 한 사람, 또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선거철 분위기가 후보들의 경쟁 열기는 뜨거운데 유권자들의 반응은 그렇지가 못하다.
왜 그럴까.
민주주의의 축제여야 할 선거 분위기가 썰렁한 것은 후보들의 자기 밥그릇에 매달린 모습을 유권자들이 시큰둥하게 바라보고 냉소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구의원, 시의원이 되고 싶든, 시장, 도지사가 되고 싶든간에 공직에 나가고자 하면 자기 밥그릇에 고착된 사고로는 곤란하다.

앞에 언급한 서울시장 후보들의 경우, 지난날의 가난을 딛고 고소득을 올리는 변호사로 성공한 편이고 가난에 복수하는 능력은 장하지만, 어쩐지 자기 본위의 협소한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주변을 돌아보는 시야가 아쉽다. 자기만이 가난했던 게 아니고 대부분의 국민이 아등바등 서럽고 구차스럽게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의 국가사회적 고난을 볼 줄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이 자기보다 이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도자의 ‘그릇’을 벤치마킹하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960년대 지방시찰을 다녀온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먹지 못해 손발이 퉁퉁 부은 어린아이와 어머니들의 정황을 말하자 가족들이 아무도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 공개하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알다시피 박대통령도 가난이 뼈에 사무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가난에 복수하지 않았다. 자기 밥그릇에 무심했다. 후임 대통령들이 본인과 측근, 친인척 등의 비리 부패로 욕을 본 것과 비교되어 그의 청렴이 돋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청렴이 그의 자랑거리도 긍지나 자존심도 아니다. 그저 심드렁한 일상의 모습,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당연한 원칙의 무심한 흐름 같은 것일 뿐이다.
자기 가난에 복수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지만, 국민으로 하여금 가난에 복수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지도력이다.
그는 자기 가난을 국가로 확대했고, 온갖 가난 극복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동원했다. 국민 저마다로 하여금 가난에 복수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열정적인 참여의 기회를 부여했다. 패배와 비운의 역사 속에 깊이 잠자던 국민적 에너지가 그때 폭발되어 의욕과 자신감으로 팽만한 박정희 시대는 거칠고 사납게 물결쳤으며, 그는 자아(自我)를 국가로 확대한 무아(無我)의 리더십으로 통치 18년을 숨가쁘게 달려갔다.

지방선거 후보들은 지도자의 ‘그릇’을 배우기 바란다.
후보들 중에 자기 밥그릇에 무심한 사람이 몇이나 될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보아하니 유권자에게 다가가려고들 ‘꼭짓점댄스’를 추기도 하고 수퍼맨 차림으로 분장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애를 쓰는 모양이다. 누구는 당선하고 누구들은 낙선하겠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나름나름 지도력이 요청되는 사람들로서 남의 밥그릇을 채워 주고 남의 고통을 부둥켜안는 모두의 컨센서스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대들이 똑바로 일어서서, 쪼개지고 뒤틀리고 질퍽거리고 악다구니 들끓는 세상 좀 바꾸어 보자. 걸핏하면 거리로 깃발 들고 튀어나가 악 쓰고 몽둥이 휘두르는 세상 좀 바꾸어 보자.
싸우지 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발 좀 뻗고 살자.
오늘이 고달플지라도 내일의 희망이 있고, 후손에게 복된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는 오롯한 믿음의 세상 좀 만들어 보자.
우리 미래의 모델은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산업화, 민주화에 이은 다음의 과제는 선진화이다. 과거의 영광은 미래의 디딤돌이니, 눈앞의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말고 역사와 미래를 보는 안목과 사심없는 봉사로 그대들이 국가 선진화를 이끌어가는 전위(前衛)가 되어주기 바란다. [조인스 디지털국회 / 김인만]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