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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작지만 위대한 생각들 '지구를 입양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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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가수 장재남과 이용이 불렀던 노래 '서울'은 "종로에는 사과 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로 시작한다. 삭막한 거대 도시에 사과와 감 나무를 심어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고 했다.

그런데 도심에는 왜 과일 나무를 심지 않을까. 가난한 도시 주민에게 식량도 제공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호주 퀸즈랜드에는 '먹어도 되는' 작은 공원이 있다. 누구든 이곳의 과일.허브.꽃.채소를 가져갈 수 있다. 관리는 지역 주민이 맡고 있다.

청계천 살리기 공사가 한창이다. 머지 않아 서울 한복판에서 물고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선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의 지역 단체는 건물.도로로 덮힌 하천을 다시 열어주는 일을 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식물을 심었다. 갖은 새와 곤충, 양서류와 뱀이 돌아왔다.

'지구를 입양하다'의 원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생각들(The World's Greatest Ideas)'이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오히려 사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놀라운 것은, 그런 작은 생각들이 세상을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대할 수 있다.

책에는 거창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주창하지 않고, 지구촌의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짤막짤막한 사례가 1백82개 나열되기 때문에 읽는 부담도 적다. 시간 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책장을 펼쳐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울림은 크다. 기발한 생각 하나하나에 "아, 이런 작은 실천 하나로도 나와 이웃의 삶이 달라질 수 있구나"하며 끄덕일 수 있다.

책 제목은 1990년대 영국에서 도입돼 지금은 국제적 본보기로 자리잡은 '지구 입양 프로젝트'에서 따왔다. 각급 학교의 학급 단위별로 방기된 땅을 입양해 지속적으로 돌보는 프로젝트다.

학생들은 '지구의 수호자'로서 자기들이 선정한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간다. 영국 중동부 리어셔의 학생들은 쓰레기 투기장이 된 연못을 골라 그곳에 크고 작은 나무와 들꽃을 심었고, 영국 남서부 콘월의 5~6세 아이들은 버려진 놀이터의 쓰레기를 치우고 낙서를 긁어내고 벽화를 그렸다. 아이들 스스로 환경의 소중함을 깨우치도록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미국.독일 등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토양 광물질 되찾기'도 흥미롭다. 자갈 채취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갈 가루를 정원이나 밭에 뿌리는 운동이다. 그러자 병든 전나무가 다시 건강해지기도 했고, 호박.토마토.콩 등의 소출량도 2~4배 늘어났다. 화학비료를 써서 키운 작물보다 영양분이 훨씬 풍성한 것은 물론이다.

장난스런 제안도 있다. 강이나 수로에 폐기물을 마음껏 버리자고 권한다. 단, 조건이 있다. 버린 사람이 그 물을 정수 처리 하지 않고 식수로 써야 한다는 것. 오염자 책임의 원칙, 혹은 자업자득의 원칙이랄까.

'지구를 지켜라'는 환경 서적이 아니다. 작게는 개인의 건강부터 크게는 국가간 갈등, 나아가 지구촌 전체의 미래까지, 우리 주변을 개선해가는 반짝반짝한 발상이 가득하다. 문화.교육.육아.정치.과학 등 사회 전분야를 건드린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자선 프로젝트 단체인 사회변화창안연구소(www.globalideasbank.org)에 접수된 혁신적 아이디어를 모았다.

아이디어들은 실용적이고 구체적이다. 일례로 자기 계발을 위해선 무차별적인 선행을 추천한다. 빈민가에 들어가 따뜻한 음식을 차려놓거나, 공원 벤치의 낙서를 지우고 다니거나 등등, 선행도 폭력처럼 스스로 자랄 수 있다고 말한다. 부동산 대신 마을 사람의 승인을 담보 삼아 돈을 빌려주며, 사업도 성공하고 빈민도 돕는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도 소개된다.

때론 황당한 아이디어도 있다. 정치인들에게 후원자의 로고가 실린 옷을 입혀 그들을 움직이는 세력을 한눈에 알아보자고 한다거나, 마약중독에 걸린 임산부가 불임 수술을 받을 경우 그 대가로 2백달러를 주자고 하는 등 논란이 일 대목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안은 유쾌하다. 또 많은 경우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삶의 질, 혹은 지구 공동체의 내일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 또한 그게 한가한 사람의 몽상이 아닌 확신에 찬 소수의 힘찬 몸짓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즐겁다. 더 나은 세상과 건강한 미래는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한 포기의 풀과 한 줌의 흙이라도 내 몸처럼 소중하게…. 환경보호는 거창한 게 아니다. 아주 작은 실천이 지구 전체를 건강하게 지킨다. 경제학자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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