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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탐·구 ⑨ 광주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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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열린우리당 조영택 후보는=30대 초반에 이미 '영감님'이었다.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34세에 최연소 장성군수가 된 그를 지역 주민들은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그 나이에 주례도 섰다. 조 후보는 장관급 직책까지 맡은 엘리트 행정관료 출신이다. 그는 순탄한 인생을 살았다. 완도에서 태어났지만 교육을 중시한 어머니 덕에 초등학교부터 '큰 물'(광주)에서 자랐다. 독자이자 막내(위로 누나가 셋)인 그에 대한 모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조 후보는 고건 전 총리와의 인연을 강조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당지도부 대신 고 전 총리와 나란히 있는 사진이 떠 있다. 선거전략이기도 하지만 고 전 총리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21세기 행정의 달인'이나 '일 잘하는 광주시장' 슬로건을 내세우는 이유다. 그는 14일에야 경선이 아닌 전략공천을 통해 여당 후보가 됐다. 김재균 광주시당위원장과의 경쟁에서 불협화음이 있었다. 불리한 점이다.

-출발이 늦었다.

"민주당 후보는 현직 시장이기 때문에 지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정당 지지도를 보면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을 앞섰다.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

-당선되면 '광주를 확 바꾸겠다'는 주장을 펴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통합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문제해결 능력도 있다. 국무조정실장 때 방폐장 부지 선정, 새만금 사업, 용산 미군기지 이전사업 등 장기적으로 표류해온 갈등 과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했다. 낙후된 광주 지역의 경제발전을 책임지겠다."

-유권자들의 민주당 지지가 만만치 않다.

"정권 재창출 역량이 부족한 소수의 민주당에 광주를 맡길 수 없다."

◆ 한나라당 한영 후보는=1941년 전북 임실의 넉넉한 '정미소집 딸'로 태어났다. 한 후보는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전주여고를 졸업한 뒤 "서울 가면 아이가 나빠질 수 있다"고 집안 어른들이 걱정해 '광주 유학'(전남대)의 길을 택했다. 광주에서 한국여학사협회 광주지부 설립을 주도하는 등 지역 여성.시민운동에 힘써왔다. 남편.아들.딸.사위.며느리가 의사인 의료인 집안이다. 한나라당은 이 지역에서 두 자릿수 득표를 희망하며 한 후보를 공천했다. 한나라당의 유일한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이기도 하다. 이방호 정책위의장은 "지역 여성계의 비중 있는 인물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 후보는 "광주를 전통.현대.미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육성하겠다"며 "화합과 상생을 이루기에도 내가 적임"이라고 강조했다.

◆ 민주당 박광태 후보는=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이다. 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대결했던 김대중 신민당 후보를 도운 게 인연이었다. 79년 '김대중 선생'의 비서로 발탁되며 그의 본격적인 정치경력이 시작됐다. 92년 이후 광주에서 내리 세 번 국회의원이 되며 지역적 입지를 다졌다. 2002년엔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가 금품살포 논란에 휘말리자 후보 등록 당일 대타로 교체돼 시장에 당선됐다. 2004년 1월 현대건설에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법정 구속돼 위기를 겪었으나 무죄가 확정돼 재기할 수 있었다.

박 후보는 부인을 도피생활 중 만났다. 73년 유신 반대 시위로 수배돼 전남 영광의 친구 집에 피신해 있던 중 소개를 받았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체포돼 2년 남짓 수감돼 있는 동안 약혼녀의 옥바라지를 받았다.

-공천헌금 파문으로 광주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데.

"그 사건으로 당 지지율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회복되고 있다. 민주당에서 이탈했던 민심은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않고 부동층으로 남아 있다가 민주당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여당 후보가 시장이 돼야 광주가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 광주를 문화 수도로 만들자는 '광주문화도시 특별법'은 누가 시장이 되건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최근 여당의원의 '5.18 군 투입은 질서유지 차원' 발언으로 광주 민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도 중앙정부 고위직에 있었던 여당 후보가 낙후된 광주 발전에 더 기여하리라는 지적도 있다.

"설득력 없는 얘기다. 광주 경제를 살릴 광주시장은 행정경력보다는 시정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

◆ 민노당 오병윤 후보는=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5남매의 가장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1년간 공장을 다녔다. 그의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야간과정을 거쳐 27세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지만 5공 정권에 대한 항거 운동으로 제적당했다. 1985년 광주교도소에서 김남주 시인으로부터 건네받은 '길'이란 시가 평생의 나침반이 됐다고 한다. 87년 6월 광주지역 집회.시위의 사회자 역할을 도맡아 했고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등만 행복한 광주가 아닌, 빈곤과 차별 없는 더불어 행복한 광주를 위해 출마했다"고 말했다. 광주시청 등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특별취재팀=김정욱.채병건.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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