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인 은행장 출근 막는 노조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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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나흘째 리처드 웨커 행장의 출근을 막고 있다. 노조 측은 은행의 매각 자체를 반대해 오다 끝내 행장의 출근 저지라는 극한의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노조는 자신들의 직장이 매각된다는 중대한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고,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시키기 위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법한 절차를 따르고 합법적 수단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는 노조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을뿐더러 자신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정당성마저 훼손할 우려가 크다.

이런 점에서 외환은행 노조의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은 이미 법적인 한계를 넘어섰다. 노조가 현재의 경영진에 대해 아무리 불만이 크다 해도 행장의 출근을 막을 권리는 없다. 엄격히 말하자면 경영진의 출입을 막는 행위는 업무방해로 사법적 처리 대상이다. 더군다나 은행의 매각 여부는 종업원이 반대한다고 좌우될 사안이 아니다. 외환은행 노조가 은행의 매각을 반대하는 근거는 당초 현재의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은행 인수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감사원의 감사를 거쳐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노조가 사법적 판단에 앞서 은행 인수의 정당성을 따지고, 매각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노조가 문제 삼을 수 없는 사안을 두고 극한투쟁을 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은행의 경영을 어렵게 하고, 결국은 노조의 입지를 스스로 갉아먹는 자해행위에 가깝다. 혹여 외환은행 노조가 최근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표출되는 반외자(反外資) 정서에 편승해 불법적 행위마저 허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정도를 벗어난 노조의 과격한 행태는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세계 최악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고, 외국인 투자자의 발길을 돌리게 할 뿐이다. 외국인 행장이 노조원들에게 가로막혀 은행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 투자할 생각이 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