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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8. 조선의 3대 구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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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8년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한 필자(맨 왼쪽).

"기왕에 '구라'얘기가 나왔으니 이른바 '조선의 3대 구라'라는 말이 나오게 된 연유도 밝혀야겠다. 대개는 문단 후배들과 문화운동 쪽의 후배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소리인데, 그 분류로는 두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백기완.방배추.황석영을 3대 구라로 친다. 다른 종류는 가운데의 방모를 소설가 천승세로 바꾸어 넣는다."

지난해 소설가 황석영이 중앙일보 연재소설에서 '조선의 3대 구라'에 대해 이같이 밝힌 뒤 전화를 꽤나 많이 받았다. 문단 안에서 웃자고 하는 말이 그때 일반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라'란 입담꾼을 뜻하는데, 우리끼리는 보통 '라지오'(라디오)라고도 한다. 황석영은 그 소설에서 오래 전부터 '신흥 구라'로 뜬다는 유홍준(문화재청장)에 대한 나의 시큰둥한 발언까지를 굳이 인용했다.

"걔가 인생이 없는데 무슨 라지오냐? 그저 교육방송이지."

어쨌거나 3대 구라에 내 이름이 끼니 거참 큰 영광이다. 앞으로 2회 더 연재하면 끝나는'낭만주먹 낭만인생'의 마무리로 구라론을 펼칠 생각이다. 왜 구라는 교육방송과 다른가? 그게 중요하다. 모파상의 소설 '비계 덩어리'얘기부터 해보자.

"보불전쟁이 한참이던 시절이다. 점령지 '루앙'을 탈출하는 마차 안에 귀족.상인.수도승 등과 함께 살이 쪄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창녀가 한 쪽에 타고 있었다. 국경지역에서 적군이 마차를 세워 검문한다는 이유로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분위기가 묘했다. 귀족.수도승이 비곗덩어리에게 자꾸 눈치를 줬다. 네 몸을 적군에게 준다면 우리는 모두가 산다며…."

이 얘기는 1974년 서울구치소에서 감방동기들에게 수없이 들려줬던 스토리다. 잡범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좋은 얘기를 해주십시요"라고 졸라댔다. 그때 비곗덩어리 얘기를 꺼내면 반응이 꽤 좋았다. 눈물을 떨구는 이도 있었다. 얘기는 계속된다.

"결국 비곗덩어리는 적군에게 몸을 준다. 자기를 던진 뒤 마차는 무사히 점령지를 빠져오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 마차 분위기가 아연 바뀌기 시작했다. 창녀를 보는 수도승.귀족들의 눈이 싸늘해졌다. 헤픈 여자 내지 형편없는 인간으로 욕하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목청을 높인다. 은연 중 실패로 점철돼온 내 삶이 반영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러분 과연 누가 애국자이고, 진정한 인간입니까? 귀족인가요, 창녀인가요?"라고…. 고백하지만 지금도 나는 이 스토리를 퍽이나 좋아해서 내 구라의 레퍼터리에 꼭 끼워넣고 있다.

모파상의 이 중편소설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따위는 내가 알 리 없다. 중요한 것은 '구라'란 입심 자랑 내지 만담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면 코미디가 된다. 따라서 구라에는 삶이 담겨야 한다. 특히 보통 사람들의 애환이 중요하다. 나이 70세를 넘긴 지금 나는 고관대작이나 유명한 이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진실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다.

배추 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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