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과거엔 조총 … 지금은 칼로 경제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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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카이시의 칼 제조 장인인 이케다 요시카즈가 자신의 가내 공장에서 칼을 만들고 있다.

12일 오후 일본 오사카(大阪)시 남쪽,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사카이(堺)시.

'이케다 단련소(鍛鍊所)'란 간판이 걸린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5평 남짓한 가내 공장이 보인다. '칼' 전통공예사 이케다 요시카즈(池田美和)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작업에 여념 없다. 금세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1000도 가까운 열로 쇠를 다루는 칼 대장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케다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가열한 지철 위에 붕산을 혼합한 분말을 붙이고, 그 위에 또 하나의 철을 겹쳐 망치로 두들겼다.

"흔히 '철은 뜨거울 때 때려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뜨거울 때 두들기면 빨리 만들 수는 있죠. 하지만 진짜 좋은 칼을 만들기 위해선 적절히 냉각하면서 때려줘야 해요. 그게 '사카이 칼'의 노하우죠."

'칼의 도시' 사카이-. 이곳은 전국시대(1573~1590)에 일본 조총의 90%를 생산했다. 임진왜란을 위한 무기 공급기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다. 그러나 전란 등으로 사카이시는 쇠퇴했다. 지난 10여 년간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기업들도 해외로 나가면서 지역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0여 년 전 3만5000개에 달하던 중소기업 중 20%인 7000여 개가 사라졌다. 이를 타개하고 지역을 다시 일어서게 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사카이시의 '온리 원(only one)' 전략이다. 뛰어난 전통 금속기술로 승부를 건 것이다. 대표 상품이 바로 '칼'이다. 2001년에는 '사카이시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 마이스터(전통공예사) 제도'를 신설, 칼 제조 장인들을 마이스터로 지정하고 집중 지원했다. 사카이의 공업고등학교에 '칼 제조' 과목도 생겼다. 그러자 감소 추세이던 칼 제조회사들이 다시 회생했다.

지난해 사카이 지역 101개 칼 업체의 매출은 250억 엔을 넘었다. 회칼만 놓고 보면 전국 횟집의 90%가 사카이산을 사용한다. 33㎝짜리 하나에 비싸게는 26만5000엔(약 225만원)까지 받는다.

이처럼 전통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카이시와 지역 기업의 '온리 원' 전략에 힘입어 사카이시는 화려했던 옛 명성을 되찾은 것이다. 또 사카이시는 이 같은 경제 활성화에 힘입어 지난달 지자체에 재정 권한이 대폭 부여되는 '정령(政令) 지정 도시'가 됐다. 일본에서 15번째다.

사카이=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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