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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학 자율화 진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제자리를 찾기 위한 진통-학내문제를 쟁점으로 하는 시위·농성이 유난히도 많았던 88년의 대학가는 타율과 비민주로부터 자율과 민주의 제자리를 찾으려는 몸부림의 한해였다.
지난해 6월항쟁을 선도했던 학생운동이 시위와 농성의 악순환 속에서 과격폭력사태와 교권침해 문제로 치달아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 한해였다.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대학의 자율화를 피부로 느끼게 한 것은 서울대의 학칙 개정. 서울대와 문교당국의 줄다리기 끝에 대학의 판정승을 이끌어 낸 서울대의 「자율학칙」은 대학생의 정치활동 금지조항과 성적불량자에 대한 학사제명 폐지가 골자였다.
4·26총선을 앞두고 대학가에 「정치바람」이 거센 가운데 일부 대학에서는 학내문제를 쟁점으로 점거농성사태가 시작됐다.
총장실·점거농성 학생들을 설득하려다 좌절되자 연구실에서 자살한 건국대 농대 이경희학장 사건은 대화와 설득을 통한 학내사태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충격적인 일이었다.
4월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를 계기로 제기된 「남북학생회담」은 5월축제를 통해 통일논의로 증폭되어 1학기 중반이후 학생운동의 주류를 이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서울대에서 「농활」지원을 요구하며 빚어진 총장실 난입·폭력사태는 교권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서울대는 주동학생 11명을 제명시키고 무기정학 9명, 근신 2명 등 초 강경의 「교권수호」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제명학생 중 2명이 「제명 무효」를 법에 호소, 그 가운데 1명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임으로써 이 사건은 교수의 학생 처벌권과 사법판결이 대립하는 새 양상으로 발전됐다.
2학기 들어 올림픽기간의 「시위 휴전」이 끝난 대학가는 「전두환·이순자 체포결사대」 회오리와 함께 학내문제를 둘러싼 분규가 본격화됐다.
재단비리 척결, 어용교수 퇴진, 학내민주화, 학교예산 공개,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등 갖가지 쟁점을 내 건 학내분규는 총·학장실 및 대학본부 점거농성과 수업·시험거부로 이어져 10여개 대학에서 학사일정이 마비되는 혼란이 계속됐다.
올해 대학가 시위(1천1백7회·참가인원 35만7천여명)가 지난해(1천8백18회·참가인원 저만1천여명)보다 횟수나 참가인원이 줄어든 데 비해 농성은 1천1백81회에 17만7천여명이 참가, 지난해(7백68회·참가인원 9만3천여명)보다 크게 늘어난 것을 보면 대학가의 몸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11월10일 발생한 목원대교수 2명의 강제삭발사건은 학생운동사상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됐다. 목원대 사태는 주동학생 2명의 구속과 이사장 사퇴 등 학교·학생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수업결손에 따른 보충수업이 내년 2월11일까지 불가피하게 됐다.
학내민주화 주장과 함께 학생들의 학교운영 참여요구도 올해 학생운동의 큰 흐름.
재단퇴진과 학내비리 규명을 요구한 세종대 분규는 40여일 간의 학사행정 마비 끝에 학생과 직원이 총장후보 자격을 사전 심사하는 「총장추대 여론수렴위원회」란 대학사상 유례없는 기구를 「탄생」시켰고 이에 따라 새 총장이 선출되었다.
대학가의 잇단 분규는 「총·학장 수난시대」란 유행어를 만들었고 11개 국립대와 30개 사립대의 총·학장이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학내분규가 대학의 가장 큰 행사인 신입생 모집에까지 영향을 준 것도 올해 학생운동의 또 타른 오점.
국제대와 명지대는 전기모집을 취소하는 사례를 남겼다.
88년 학생운동의 피날레는 등록금 인상반대.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에 대응하는 학생들의 등록금 동결요구는 전국대학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일부 대학에서는 신입생 입학원서 접수를 방해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
결국 23개 대학이 등록금 동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앞으로도 신학기까지 불씨는 계속 남아있다.
자율화·민주화의 몸살이 큰 상처를 남긴 88년의 학원사태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민주화는 또 다른 악순환을 낳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 것이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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