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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합 위한「고단위 처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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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질적으로 의미 큰 시국사범 석방
21일자로 단행된 대규모 사면·복권조치는 5공화국 시대의 갈등과 충돌로 옥고를 치렀던 사람들에 대해 국민대화합과 민주발전을 위해 그 매듭을 풀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5공화국 기간 중 모두 18차례에 걸친 사면·복권이 단행돼 1만2천3백64명이 혜택을 받았고 6공화국 출범과 함께 지난 2월 27일 7천2백34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면이 단행됐으며 지난 6월 30일 46명, 광복절과 개천절에 36명 및 기명이 각각 석방됐지만 그 동안 구속자석방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끊이질 않았었다.
이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은 지난달 26일의 시국수습담화를 통해『지난 시대 어두운 상처를 씻고 새로이 출발할 것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지금까지 시국과 관련하여 법의제재를 받고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사면을 실시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시국과 관련된 일로 권리가 제한된 사람은 모두 복권 되도록 하고 형을 받고 있는 사람은 석방되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면·복권조치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앞으로 구속자 문제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시켜 전향적 민주발전을 도모키 위해 종전의 기준을 탈피한「고단위처방」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이번 조치가 그 숫자 면에선「5·16」1주년의 2만1천9백10명, 61년 광복절의 1만1천1백39명, 지난 2월의 7천2백34명 등에 비해 적은 규모지만 각 당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 시국관련사범의 경우 죄질을 불문하고 모두 석방·사면·복권·수배 해제했으며 재일 교포 간첩사건 관련자 등 전향한 공안사범에 대해서도 죄질을 불문하고 대폭적인 가석방 및 감형 등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대사면 방법도△수사중인 자는 구속취소△재판중인 자는 구속취소 청구△복역중인 자는 잔형 면제·사면 및 복권△출소자는 복권△수배자는 수배해제 등으로 법적인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치에서 수사 중에 있는 30명은 검찰의 구속취소로 석방되며 재판 계류중인 1백23명에 대해서는 검찰이 법원에 구속취소를 청구, 법원의 구속 취소결정에 따라 석방된다.
또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증인 전 민통련 정책연구실장 장기표씨 등 1백28명은 가석방(87명)과 특별사면 및 복권(41명)으로 석방된다.
법무부는 재판계류증인 사람들에 대해 공소취소를 하지 않고 법원에 구속취소를 청구키로 한 것은 새로 구성된 사법부의 의견을 존중했고 1심뿐만 아니라 2, 3심 계류중인 사람들도 혜택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간첩 등 공안사범은 시국사범에 해당되지 않아 이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제외시켰지만 복역기간·행형성적 및 연령 등을 고려, 인도적 견지와 국민화합차원에서△남민전사건·통혁당사건 관련자 전원△재일 교포 간첩사건 중 가석방요건 해당자 전원을 가석방하고(총87명)△재일 교포 간첩사건 관련자 중 가석방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사형수△무기수로 10년 이상 20년 미만 복역한사람△초범으로 형기의 2분의 1이상을 복역한 사람에 대해서는 감형을 실시했다(총92명)고 말했다.
이와 함께 5공화국시절 의사당사태와 관련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민주당 김동주 의원 등 5명과 국가모독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무소속의 이철 의원, 정치활동 금지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민주당 김덕룡 의원, 대우조선 노사분규 관련으로 기소된 평민당 이상수 의원, 평민당 문동환 의원, 이문영 고려대 교수, 시인 고은 씨 등 YH여공사건 관련 5명 등 모두 14명이 공소 취소됐다.
이와 같은「대사면」을 둘러싸고 일부 법조계에서는 사면·복권이 정치권의 흥정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는 시국사범·공안사범 등을 둘러싸고 조작시비가 있어「구속의 타당성」등 원천적인 문제 때문에 석방시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엄정한 법 집행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즉, 꼭 처벌해야할 사람만 구속하되 한번 구속되어 형이 확정된 사람은 가능하면 집행을 마칠 수 있어야 법의 존엄성이 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통령 성명이후 수사중인 시국사건관련 피의자 석방과정에서 일선 검찰관계자들의 내면적인 항의나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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