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부추기는 자극적 사진 … 지워도 지워도 또 올라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⑭

두 달 전 자살유해정보 클리닝 시민감시단 활동을 했던 A씨는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봤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A씨는 “첫날 선혈이 낭자한 자극적인 자해 사진을 본 뒤 잠도 잘 수가 없었다”며 “내가 봐도 충격이 큰데 자살 시도자가 볼 경우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자살예방의날 만난 감시단 고충 #처벌 규정 없어 3년 새 5배 늘어 #게재 땐 최대 징역 2년 입법 추진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유해정보 삭제업무 맡았던 이주민(30)씨도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씨는 “삭제 요청을 진행한 뒤에 다시 같은 자해 사진이 올라와도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삭제 작업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일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중앙일보가 만난 자살유해정보 모니터링 활동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자살유해정보가 지워도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음란물과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제한할 법적 규제는 미흡하다. 현행법상 자살방조죄(형법 제252조 제2항)가 있지만, 이는 자살하려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왔을 때 적용된다. 현행법으론 자살유해정보 유통에 대해서는 처벌을 할 근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상 자살유해정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매년 일정 기간을 정해 자살유해정보 클리닝 활동을 하고 있다. 2015년 클리닝 기간(6월15~28일)의 신고 건수와 삭제 건수는 각각 3169건과 1855건이었다. 그러나 올해 클리닝 기간(7월18~31일)의 신고 건수는 1만7338건, 삭제 건수는 5957건으로 집계됐다. 3년 만에 신고 건수는 5배, 삭제는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불법정보로 규정된 동영상 음란물과 다르게 자살 관련 게시물은 단순 유해정보로 규정돼 강제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현 상황에서는 게시물의 삭제만 유도할 뿐 삭제된 뒤 사용자가 다시 동일 게시물을 올려도 제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자살유해정보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일명 ‘자살 사고(思考)자’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며 “자살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자살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연상하는데 이 사람들이 자살유해정보에 노출될 경우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자살 사망자 수는 2010년 1만5566명에서 2016년 1만3092명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규제 필요성을 공감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이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자살유해정보 유통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살예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 의원은 “자살유해정보에 대한 제재와 함께 범정부 차원의 자살예방 시스템 구축, 지자체별 자살예방조례 제정, 시민사회 차원의 자살예방 정책추진 등의 예방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중앙일보·안실련·자살예방협 공동기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