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 뉴질랜드인 "장애는 능력 부족 아닌 새로운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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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가 없는 뉴질랜드의 산악인 마크 잉글리스(47)가 15일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뉴질랜드 언론은 16일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은 잉글리스가 처음"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현지 일간지인 뉴질랜드 헤럴드는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경에 이은 뉴질랜드인의 승리"라고 전했다.

1982년 어느 날 뉴질랜드 마운트 쿡 국립공원에서 산악구조대원으로 일하던 잉글리스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심한 눈보라로 고립돼 얼음 동굴에 2주간 갇혀 있다 구조됐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동상에 걸린 두 다리를 잘라야 했다.

'산 사나이'에게 다리는 생명이나 다름 없었다. 산을 등지고 학업에 몰두해 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산에 대한 그리움은 스키로 달랬다. 90년대 초 국제 대회에 출전할 만한 스키 실력을 갖췄다. 사이클도 연습해 2002년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산이 다시 손짓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의족을 달고 다시 산악인의 꿈을 키웠다.

산악인으로서 제2의 인생은 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 산에서 시작했다. 2002년 마운트 쿡(3754m) 정상에 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때 에베레스트를 새 목표로 삼았다.

지난달 7일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뒤 40여 일간 눈보라와 강풍, 추위와 싸운 끝에 에베레스트 8850m 정상에 섰다. 등반 도중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지지자들에게 소식도 직접 전했다.

"의족을 풀어 놓아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풀어 놓으면 적응이 어렵고, 계속 달고 있으면 상처 부위가 아물지 않을 것 같다."(4월 6일)

"이번 등반은 빠른 것이 목표가 아니다. 누가 오래 버티느냐의 문제다"(4월 12일)

"등반길에 오른쪽 다리가 두 동강 났다. '응급처치'를 한 뒤 살살 걸어 내려왔다. 한쪽 발로 뛰면서 텐트로 와서 새 것으로 갈았다."(4월 29일)

잉글리스는 "장애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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