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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쉬쉬…美선 정보 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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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방미 중인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미국의 희망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다국적군을 지휘.관리하는 중심적 역할''여단과 사단의 중간 규모'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청와대에 '조용하게' 그 뜻을 전달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이달 초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대사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파병 요청을 했던 당사자다.

그러나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미국 측의 요청에 대해 "파병부대 규모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며 독자적 작전 수행능력을 가진 경보병 부대를 요청했다"고만 공개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파병 규모에 대해 "폴란드형 사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요청 내용 중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방미 중인 崔대표를 수행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우리 정부가 들은 얘기는 더 많을 것"이라며 "어느 나라 군대를 넣을 것인지, 다른 나라 군대가 들어오면 작전을 어떻게 수행할지, 구성은 어떻게 될지의 얘기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혹은 여당 의원들도 제기했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당파의 천용택 의원은 국회 국방위에서 "미 국방부가 우리 정부와 병력의 규모.임무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율도 없이 파병을 요청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파병 같은 중대한 문제를 국가 간에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논의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의원들은 롤리스 부차관보가 정부에 파병 요청 내용을 설명하면서 비공개를 요구했고 이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은 "대통령이 국민 여론을 봐가며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파병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야 제대로 된 국민 여론이 형성될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특히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崔대표에게 "한국이 파병을 하면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될 것"이란 말도 했다. 파병 결정에 중대한 판단 근거가 되는 대목임에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채 여론 수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의원들이 제기하는 문제다.

이에 따라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정부가 정보 공개 등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한나라당 김영선 대변인은 "파병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라"며 "추가 파병은 중대한 국가 안보.외교 사안인 만큼 미국에서 어떤 제안을 받았는지 국정 책임자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게 도리"라고 요구했다.

이날 파병 반대 성명을 발표한 신당파 김성호 의원 등도 "미국이 어떤 규모와 성격의 파병을 요청했는지 불명확해 답답하다"면서 정부의 적극적 정보 공개를 희망했다.

공노명 전 외무부 장관은 "정부가 리더십을 갖고 결정해야 할 문제를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면서 "대의정치의 의미를 살려 정부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고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형식을 밟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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