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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faction)은 모두 사실이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효자동 이발사(The President's Barber, 2004년).

미국의 현대사를 그린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로 송강호와 문소리, 이재응이 출연했다.

*5월16일 소사

1929년 첫 아카데미 영화제 개최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발생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본격적인 점화
1995년 일본, 옴 진리교 교주 체포

역사는 많은 것을 제공한다. 아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주장한 역사학자 E. H. 카에 동의한다면, 현재의 필요성이 역사를 들추게 하는 동력인지도 모른다. Fact(사실)와 Fiction(꾸며낸 이야기)을 합한 팩션(Faction)이 유행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아직 아픔이 남아 있는 우리 현대사에 줄을 대고 있다.

영화는 5.16보다 조금 앞선 시기부터 시작된다. 나랏일은 모두 옳은 거라 생각한 이발사 성한모는 3.15 부정선거에도 참여하고, 사사오입의 논리로 결혼을 하더니, 첫 아들마저 4.19가 터지는 날 낳는다. 운영하던 이발소가 나라님 사는 효자동에 있는지라 새벽에 지나가는 탱크도 구경한다. 이발소에 대통령 사진 걸어놓고 생업에만 충실하던 그가 어느 날 느닷없이 이발 도구 챙겨 들어간 곳이 청와대요 손님은 대통령이다.

이 영화는 상당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는 어쨌든 현대적 해석이고 영화 역시 하나의 해석을 했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는 날 극장 앞에는 영화 내용을 문제 삼아 몰려온 시위대가 있었다. "실제로 10여 년간 이발을 담당했던 모씨는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극찬했는데 영화는 강압적인 정권 분위기를 묘사해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켰다"고 항의했다.

이 경우를 보면 사실에서 소재를 가져온 팩션은 모두 사실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혹자는 시위대처럼 사실을 왜곡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할 것이고, 다른 편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개연성에서 출발해 현대적 해석을 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TV 사극이나 그 모태가 된 역사 소설을 가지고 논의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 당시 유행하던 설사병이 간첩에 의해 전염된 불순한 병이라고 규정돼 화장실 가기가 두려워진다는 내용이다. 나라에 충성스런 성한모는 물똥을 줄줄 싸는 아들 낙안을 기어코 경찰서로 데려간다.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에서 스스로 자라기를 거부한 난쟁이 오스카는 역사의 발전을 멈춘 나치즘의 은유라는데, 영화 속의 낙안은 간첩 용의자로 고문을 받아 걷지 못하게 된다.

성한모는 웬 도사가 말한 대로 용의 눈과 국화꽃을 다려 낙안에게 먹이고, 기적처럼 낙안이 걷게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여기까지 우리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하지 않는다. <양철북>에서 오스카가 다시 성장하듯이, 낙안이 걷게 된 것으로 말을 대신한 것일까? 나아가 영화가 사회적 목소리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최근의 박정희 재평가 논쟁은 여기에도 있다. 성한모라는 소시민은 독재의 희생양인가? 아니면 동조자였는가? 박정희 체제의 평가와 맞물려 나온 대중독재론이 화두다. 즉, 나치와 마찬가지로 독재에 대한 대중의 순응과 소극적 지지가 있었지만 그것을 '동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다른 쪽은 근대의 독재는 억압과 폭력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동원 체제를 구축했으며, 나아가 대중의 광범위한 동의 기반을 누렸다고 주장한다.

영화라는 텍스트는 역사처럼 많은 질문을 던진다. 받을 준비를 한다면 좋은 방법이 아닌가.

자료제공=유캔논술 www.u-can.co.kr , 02-6408-5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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